‘세시봉 친구들’ 한 무대… 노래는 시간을 되돌렸다

입력 2011-03-31 17:40


학전 개관 20주년 기념 공연

가객들은 늙었지만 노래는 변한 게 없었다. 40여년 전 통기타 반주에 사랑과 세상을 실어 보내던 조영남(65) 송창식(64) 윤형주(64) 이장희(64) 김세환(62) 양희은(58)…. 요즘 ‘세시봉 친구들’로 통하는 이들과, 이들의 벗인 김민기(60) 학전 대표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노래했다. 노래는 시간을 되돌렸고 관객들은 향수에 젖었다.

바로 지난 30일, 학전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열린 공연에서였다. 타이틀은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5-김민기의 오래된 친구들’.

노영심의 사회로 시작된 공연 오프닝은 양희은이 장식했다. 그는 청색 셔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한 사람’을 불렀다. 올해로 데뷔 40주년이 됐고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양희은이지만 이날만큼은 ‘막내’였다. 양희은은 “제가 막내라 오프닝을 했어요. 오프닝이 이렇게 무섭고 떨리다니”라며 머쓱해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진 공연은 이렇다할 연출도, 순서도 없었다. 한 번 무대에 올랐던 가수가 다시 등장하기도 했고 나이순대로 진행된다는 당초의 공연 순서는 무의미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부르고 내려간 양희은에 이어 김세환, 조영남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20년 전 샀다는 야구 점퍼에 후드티를 입은 김세환은 ‘사랑하는 마음’ ‘길가에 앉아서’를 불렀다. 조영남은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0년대 김민기와 소식이 끊겼을 때, ‘어디 끌려가서 맞아 죽었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김민기가 ‘없어진 줄 알고’ 만든 ‘가버린 내 친구여’를 열창했다.

이후 송창식과 윤형주, 이장희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세시봉 콘서트’가 재연됐다. 트윈폴리오로 호흡을 맞췄던 송창식과 윤형주는 함께 ‘웨딩케익’ ‘하얀 손수건’을, 이장희는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렀다. TV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없던 김민기는 공연 내내 객석이 아닌 무대 한 구석에 앉아 이들과 함께 했다. 김민기는 바로 다음날이 환갑이었다.

공연 도중에는 조영남의 제안으로 ‘포토 타임’이 연출되기도 했다. 김민기를 포함한 그 시절 친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인 만큼 이날을 기념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조영남은 “사진 찍는 사람 없나요. 믿으시거나 마시거나 지금 이 숫자가 다 모인 것은 이 자리가 처음입니다. 실로 처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여러분들한테 고맙다는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옛 친구들이 무대에 나란히 앉아 포즈를 취하자 관객들은 플래시를 터뜨렸다.

이장희는 김민기에게 띄우는 두 장 분량의 ‘러브레터’를 낭독해 감동을 선사했다.

“민기의 노랫말과 노래는 전무후무한 스타일로 독보적입니다. 어떻게 아침이슬 같은 가사가 씌어질 수 있는지 저에겐 충격이었죠.(중략)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민기가 다시 기타를 들고 ‘형 이 노래 들어봐’ 하고 다가오기를. 민기야, 죽지 마라. 아이 러브 유 베리 머치.” 편지 낭독이 끝나자 김민기가 다가와 이장희를 꼭 끌어안았다.

공연의 절정은 김민기의 내레이션과 양희은의 노래가 어우러진 ‘봉우리’가 나올 때였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노래 첫머리를 여는 김민기의 내레이션에 가수들과 관객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처음이면서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진정한 ‘세시봉 친구들’의 콘서트는 그렇게 끝나갔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