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매뉴얼君
입력 2011-03-31 17:54
‘매뉴얼군(君)’이란 말이 한때 일본에서 유행했다. A식당에서 B를 먹고 C로 산보를 갔다가 D카페에서 야경을 보며 E라는 대사를 읊조리는, 이게 바로 매뉴얼군의 모습이다. 새 남자친구와의 데이트가 헤어진 남자친구와 갔던 똑같은 코스로 전개된다면….
하지만 매뉴얼군은 미리 준비한다는, 그래서 실패를 최소화하고 준비한 만큼의 성과를 얻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매뉴얼은 관례와 원칙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성품과 잘 어울린 덕분인지 일본사회 곳곳에 뿌리내렸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꼬박 삼 주일이 지났다. 규모 9.0의 지진이 빚어낸 사망·실종자는 3만명에 육박한다. 2004년 규모 7.6의 인도네시아 아체 지진 때 인명피해 20여만명과 대비된다. 매뉴얼대로 대응한 덕분에 피해를 줄인 듯 보인다.
그런데 이번 지진·쓰나미로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이전에도 빈번하게 지진 피해를 겪었던 도호쿠(東北)의 산리쿠(三陸) 해안이다. 더구나 피해자 대부분이 어민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들은 매뉴얼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며칠 전 서울에서 만난 가와무라 가즈노리(河村和德) 도호쿠대 교수는 매뉴얼의 한계를 지적한다. 해안에서 좀 떨어진 곳에선 매뉴얼이 그런대로 작동할 수 있었지만 해안가 어민들은 매뉴얼에도 없는 초대형 재난에 대응할 겨를조차 없이 당했다고 했다.
매뉴얼의 기준을 뛰어넘는 상황은 원전 사고에서는 물론 이재민들에게 물과 식량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고 복구 작업이 더디게 이뤄지는 원인으로 이어졌다. A 다음에 B로 이어지리라 예상했었는데 갑자기 X란 사태가 솟구치면서 모든 게 꼬이고 말았다.
가와무라 교수는 구호품의 배급이나 관리를 맡아야 할 지역 공무원까지 희생을 당한 터라 처음엔 나서는 이가 없어 이재민 지원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매뉴얼에도 없었던 리더십을 누군가 발휘해야 했지만 그 때문에 행여 나중에 책임을 묻는 사태가 생길까 사람들은 우려했다는 것이다.
해외 지원, 국내 자원봉사자들의 현지 활동도 쉽지 않아 일본사회의 폐쇄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 역시 매뉴얼의 한계다. 일본에는 우리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이 없는 탓에 이재민들은 외부 인사들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일부 자원봉사자들에 의한 금품 도난 사건도 있었으니.
이제 일본은 매뉴얼의 한계를 극복하는 쪽으로 더욱 노력할 터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위기대응책은 뭔가. 매뉴얼이라도 있는지 걱정이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