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흥부가 착하다 하는 이유는 ‘고엘’ 역할 훌륭히 했기때문
입력 2011-03-31 17:50
놀부를 왜 나쁘다고 하나요? 심술이 많아서 그럴까요? ‘고추 밭에 말 달리고, 애동호박에 말뚝 박고, 늙은 호박에 똥칠하고, 애 밴 부인의 배통 차고, 새 초빈에 불 지르고’ 이런 심술 때문에 나쁘다고 하나요? 신앙적으로 보면 더 깊은 까닭이 숨겨져 있습니다.
판소리 ‘흥보가’에 등장하는 두 인물, 놀부와 흥부는 ‘부’와 ‘가난’의 대명사입니다. 이들에게 이렇게 빈부격차가 생긴 것은 단지 놀부가 부지런하고 흥부가 게을러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실은 놀부가 아버지의 재산을 동생과 나누지 않고 독차지해 버렸기 때문에 흥부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구약에는 ‘고엘 제도’가 있습니다. 고엘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친척’(민 5:8), ‘대속자’(욥 19:25), ‘기업을 무를 자’(레 25:25, 룻 2:20)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고엘의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어떤 사람이 몹시 가난해져서 땅을 팔았을 경우 그 땅을 도로 찾아줄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은 땅을 팔면 다시 돌려받을 수 없지만 구약 시대에는 땅값을 지불하면 땅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고엘이 해야 합니다. 혹은 누가 큰 빚을 졌을 경우, 고엘이 그 빚을 대신 갚아주어야 합니다. 종으로 팔려갔을 경우에는 몸값을 주고 종살이에서 풀려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간혹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경우 고엘이 대신 복수해 줍니다. 이를 ‘피를 보복하는 자’(민 35:24, 신 19:6)라고 합니다.
고엘이 되는 순서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형제’에게 우선권이 있습니다. 만약 형제가 형편이 어려워 고엘의 의무를 감당할 수 없으면 그 다음으로 ‘가까운 친척’이 고엘이 됩니다. 만약 가까운 친척도 형편이 딱하면 ‘먼 친척’ 중에서 누군가가 고엘의 책임을 맡게 됩니다.
흥보가에서 놀부는 흥부의 형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일 먼저 흥부의 고엘이 되어야 합니다. 흥부의 빚을 갚아주고, 땅도 찾아주고, 그렇게 해서 먹고살 길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흥부가 먹을 것이 없어 가난타령을 하고, 심지어 매품을 팔러 다니기도 하고, 양식이 없어 식구들이 쫄쫄 굶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고엘의 책임을 내팽개치는 처사입니다.
흥부는 어떻습니까? 흥부는 박을 타다 부자가 되고, 놀부는 쫄딱 망해서 쪽박을 차게 되었습니다. 이때 흥부는 놀부를 찾아가 자기 재산의 절반을 떼어 나누어 줍니다. 놀부는 흥부 덕분에 빌어먹는 신세를 면했습니다. 이렇게 놀부가 궁핍해졌을 때 흥부는 고엘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었습니다.
고엘 제도는 넉넉한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노숙인, 혼자 사는 어르신, 실직자, 점심을 굶는 아이들, 청년실업자, 다문화가정의 외국인 며느리, 새터민 등과 같은 사람의 고엘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고엘 제도 속에 담긴 구제와 돌봄의 뜻을 이해하고 제대로 실천한다면 흥보 마누라가 부르던 ‘가난 타령’이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오종윤 목사 (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