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의 아프리카] 카다피와 모기論
입력 2011-03-31 17:57
리비아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인간 띠를 만들면서까지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카다피 측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석유자원을 노리는 현대판 십자군이라고 다국적군을 규정한 카다피가 총칼을 겨누고 있는 것은 자국민이기 때문이다.
인권과 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공습을 감행하는 다국적군의 공식적인 수사도 신뢰하기가 쉽지 않다. 기시감(旣視感) 때문이다. 이번 전쟁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재판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리비아는 매우 복잡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리비아를 비롯한 대다수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이슬람 권역에 속한다. 지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와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 사태를 아프리카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분석이 가능하다. 카다피는 아프리카의 미래와 관련해 중차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카타르 같은 이슬람 국가도 카다피 축출을 공공연하게 거론하며 다국적군을 지원하고 나서는 판이다. 그런데도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리비아 사태에 하나같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동의 지도자가 아닌 아프리카의 지도자로서 카다피에게 거는 아프리카인들의 기대가 남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아프리카가 그나마 이 정도라도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모기 덕분이다. 모기가 우리의 구세주였다.” 카다피가 한 말이다. 비스마르크 이후 유럽의 식민주의 세력은 드러내놓고 아프리카를 분할,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온다습한 아프리카 대륙의 내지를 마음껏 정복할 수가 없었다. 풍토병과 체체파리가 옮기는 수면병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라리아 때문이었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온전히 정복하게 되는 시기는 말라리아 약이 공식적으로 시판되기 시작하는 20세기 초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없었다면 아프리카 대륙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게 파괴됐으리라는 카다피의 일갈을 희비극적 수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수용한 아프리카 민초들은 의외로 많았다. 이 말은 미래의 희망을 모기에게 기댈 만큼 아프리카의 상황이 열악했다는 뜻도 있지만 식민제국의 착취가 얼마나 가혹하고 극악무도한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케 한다.
카다피는 모기를 내세운 이 발언으로 아프리카인들을 정서적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 종교가 하나여서 통합이 비교적 수월한 중동 국가들과 달리 아프리카인들을 통합할 매개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카다피의 모기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식민주의라는 공통의 비극적 역사를 환기시켰고,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중요한 정서적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종교와 언어 그리고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아프리카인들을 정서적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 카다피의 모기는 이후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했고, ‘아프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frica)’ 건설과 같은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 동력이 됐다. 이번 전쟁에 아프리카인들이 침묵하는 이유다.
이석호 <아프리카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