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제작과정과 문제점… “50명이 3단계 검증해요… 뭐, 틀릴 수도 있죠”
입력 2011-03-31 17:57
“처음에는 한 번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겼는데,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지금 2단원 (수업) 하고 있는데 세 번쯤 나온 듯해요, 이런 오류가. 오늘은 또 31쪽 정답이 196.8이라고 해서 제가 틀린 줄 알고 손으로도 다시 계산해 보고, 계산기도 다시 두들겨 봤지만 196.8이 아니라 196이더군요.”
교육과학기술부는 친절하게도 ‘교육과정·교과서 정보 사이트’란 걸 운영하고 있다. 초·중·고 교사들이 학생들 가르치다가 교과서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의견을 올리는 곳이다. 이것은 지난 30일 초등학교 6학년 수학 교과서에 대해 어느 교사가 문의하며 올린 글, 아니, 하소연이다.
이런 글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올라온다. 교과부는 “교과서 오류의 상시 수정 체제를 확립하겠다”며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오류 상시 수정.’ 굉장히 좋은 말인데, 뒤집어보면 그래야 할 만큼 우리 교과서에 오류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웃기는’ 교과서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 과학 교과서에 용수철 원리를 설명하는 자료로 손 운동 기구인 ‘악력기’ 사진이 실렸다. 사진설명은 엉뚱하게 ‘펀치(문구용 타공기)’라고 달렸다. 한 교사가 문의했다. “‘펀치에 사용된 용수철’이란 사진은 펀치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 사진은 악력기가 맞는 듯합니다.”
출판사는 실수를 인정했다. “선생님 말씀대로 펀치가 아닙니다. 내년(2011학년도) 교과서에는 수정해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진이 실렸는지 해명한 대목이 재미있다. “구멍 하나짜리 펀치 사진을 더 명확한 사진으로 교체하면서 오히려 불명확한 사진이 들어간 듯합니다.”
지난해 6월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이런 글을 올렸다.
“4학년 1학기 과학을 가르치면서 교과서 내용의 통일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과정에서 식물의 한살이(씨앗에서 싹 터서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과정)는 ‘한해살이’와 ‘여러해살이’란 용어로 가르치는데 교과서에 갑자기 ‘두해살이’란 용어가 생뚱맞게 나옵니다.”
교과부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국정 과학교과서에 교육과정의 분류와 다른 ‘두해살이’ 식물이 난데없이 나타난 것이다. 며칠 후 출판사 답변이 달렸다. “(두해살이를 빼고) 한해살이와 여러해살이로 표현하기로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더 좋은 교과서가 되도록 연구하겠습니다.”
왜 두해살이가 갑자기 등장했는지 설명은 없다. 보름 뒤 교과부는 해당 내용의 수정을 일선 교육청에 요청했다. 교과서를 리콜하진 않았고, 9개월이나 지난 이달에야 수정된 교과서가 배포됐다.
지난해 12월 서울 광운중 2학년 이준기·준호 쌍둥이 형제는 과학 교과서가 원시 포유류의 화석 사진을 ‘공룡의 뼈’로 잘못 소개한 것을 찾아냈다. 사진 속 두개골과 발가락이 공룡보다는 포유류에 가까웠고, 문제를 제기하자 교과서 집필진은 오류라고 인정했다.
중학생 형제가 발견할 때까지 10년간이나 이 사진은 ‘공룡의 뼈’로 교과서에 실렸다. 이런 교과서는 보통 교수 교사 장학사 등 50명 이상이 참여해 만들어진다. 10년이면 연인원 500여명이다. 500명이 10년 동안 이 문제를 찾아내지 못했고, 수십만 명이 이를 ‘공룡의 뼈’라고 배웠다.
최근엔 전라북도가 교과서 때문에 단단히 뿔이 났다. 환경 등 여러 문제로 민감한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학교 1학년 과학 교과서가 잘못 기술했다. 새만금 방파제 내부 개발은 2020년 완공 목표인데 교과서에는 올해 마무리된다고 적혀 있다. 20조원이 필요한 사업비용도 4조원밖에 들지 않는다고 기술했다. 중1 과학 교과서 17종이 대부분 같은 실수를 했고, 전라북도는 지난달 이를 바로잡기 위한 개선 작업에 나섰다.
‘송어’를 ‘송어’로 부르지 못한 코미디는 교과서의 오류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곡 ‘송어’는 한국에서 지난 60여년간 ‘숭어’로 불렸다. 일제시대 잘못 번역된 것이 중·고교 음악 교과서에 그대로 실렸다. ‘송어’는 교과부가 수정 명령을 내린 2007년에야 제 이름을 찾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영 연구원은 14일 ‘초·중·고 사회 분야 교과서의 사회정책 관련 내용 분석 보고서’를 펴냈다. 사회 교과서에 오류가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2010년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79.1세가 될 것’이라고 적혀 있지만 통계청 장기인구 추계에 따르면 79.6세가 맞는다. 일부 교과서에는 ‘맹인’같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도 남아 있었다.
3단계 심의한다는데…
초등학교 교과서는 대부분 국정교과서다. 중·고교는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담긴 검·인정교과서를 사용한다. 여러 출판사가 경쟁해 좋은 교과서를 만들자는 취지다. 국정, 검·인정 교과서는 나름의 심의 과정을 거친다. 특히 국정교과서는 교과부가 직접 심의한다. 검정교과서는 교과부가 위탁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이, 인정교과서는 시·도교육청이 자체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한다.
교과부는 국정교과서 심의가 3단계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단계마다 수차례의 심의 회의가 열려 집필에서 발행까지 통상 2년6개월에서 3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국정교과서는 교과부가 대학이나 연구소 등 연구개발 기관을 공모해 선정하면 해당 기관이 편찬을 맡는 방식이다. 편찬진은 연구진과 집필진으로 나뉘어 교과서를 만드는데 통상 6개월∼1년이 소요된다.
이후 교과서 1차본(원고본)을 ‘국정도서편찬심의위원회’가 최소 네 차례 공식 회의를 열어 심의한다. 2차본(실험본)은 1년 동안 시범학교에서 사용하며 내용 오류나 삽화, 편집 등을 수정한다. 3차로 편찬진과 심의위원회, 시범학교 교사 등이 모여 2차본을 다시 심의한다.
세 단계나 심의를 걸치는데 왜 오류가 나올까? 그것도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로 선정됐다’거나 ‘유엔이 문자 없는 나라들을 상대로 한글 보급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식의 황당한 오류가. 국정교과서가 여러 자료를 인용하면서도 별도의 검증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믿었다. 복수 언론이 보도한 거면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나. 저희가 일일이 검증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 검증 하라고 100쪽짜리 교과서 한권에 50명씩 연구·집필·심의진 이름 올려서 원고료 주고, 작업 부대비용 대주고, 인세까지 주는 것 아니었던가?
교과부가 교과서 제작진에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보자.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만든 ‘교과용 도서 편찬 유의사항’에는 ‘삽화·도표·통계 등의 자료는 최신의 것을 적절하게 선정하고 출처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한 게 그나마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각 출판사가 만드는 검정교과서는 교과부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교수와 교사들로 검정위원을 위촉해 심사한다. 인정교과서는 시·도교육청이 심의하는데 국정교과서보다 느슨할 수밖에 없다.
교육계 인사들은 국정교과서와 검·인정교과서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가 다르다고 말한다. 국정교과서가 사용되는 초등학교는 담임교사가 모든 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에 교과서를 전문적으로 뜯어볼 ‘교과 교사’가 없기 때문에, 검·인정교과서는 선택과목이 많아지면서 교과서가 난립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심의가 어렵다고 한다.
교과서, 추락하는 권위
교육 공무원들은 외부 시선보다는 교과서 오류에 관대했다.
“인간이 만드는 것이어서 완벽할 순 없잖아요. 엄선된 분들이 교과서 제작에 참여하는데… 솔직히 참고서나 학습지는 훨씬 조악해요.”(서울시교육청의 한 장학사)
“학부모들은 교과서를 바이블로 생각하지만 교사들 생각은 좀 다릅니다.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과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은 다르거든요. 교과서는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란 얘깁니다.”(교과부 소속 연구관)
그러나 교과서에 오류가 계속되면 권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교육계 관계자는 “중·고교에선 교과서에 참고서 기능이 더해져 많은 학생들에게 여전히 중요하지만, 초등학교는 교과서보다 참고서나 문제집 보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교육과정이 수시로 바뀌면서 교과서 개편도 너무 빨리 진행된다고 지적한다. 교과서 제작에 참여했던 민모 교사는 “교과서 집필 기간이 너무 짧다. 새 교과서가 출간되는 데 2∼3년 걸린다. 하지만 교과별 교육과정 기준을 만드는 시간 등을 제외하면 실제 집필 기간은 길어봤자 반년이다. 그 반년 동안 집필 사전 협의, 집필진 구성, 집필, 심의까지 이뤄진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담긴 교육철학이 너무 얄팍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아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이며,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 글자인지 가르칠 방법이 ‘세계 1위’란 루머를 인용하는 것뿐이냐는 얘기다. 동훈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우리 것이 최고라고 강조하려면 사실 검증부터 해야 하는데, 거꾸로 ‘우리가 최고다’라는 이데올로기에 사실을 꿰맞추다 보니 황당한 일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