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는 ‘그림 읽기’의 즐거움… ‘그림 읽는 도서관’
입력 2011-03-31 17:30
그림 읽는 도서관/박제/아트북스
1600년대 초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 그림 ‘플라타너스 나무의 다람쥐들과 나무를 오르려는 사냥꾼’에 그려진 다람쥐들은 유럽산 다람쥐의 일종인 청설모다. 그런데 화가 아부 알하산이 그린 청설모 그림은 놀라우리만큼 생생하다. 영상 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던 시절, 무굴제국 그림에 유럽 동물이 등장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당시 무굴제국의 황제는 자한기르였다. 코끼리를 위해 겨울에 따뜻한 목욕물을 준비하게 할 정도로 남다른 동물 애호가였던 그는 서양 선교사가 낯선 동물을 가져오면 궁정화가에게 세밀히 복사하도록 시켰다고 한다. 그 덕에 궁정화가들은 왕이 여행이나 전투를 떠날 때마다 자연 생물을 자세히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림에 나타난 청설모들은 황제가 유럽인들에게서 선물 받거나 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플라타너스 나무의 다람쥐들과…’는 15세기부터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동·서양의 관계와 황제의 개인적 취향까지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그림 읽는 도서관’(아트북스)은 이 같은 방식으로 옛 그림 속에 감춰진 사회사를 읽어내는 책이다. 그림이 주술적·종교적 혹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제작됐던 시절의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를 분석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래서 옛 그림들은 미술사학자들이 뛰어놀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일반인들은 미술을 머리 아픈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달리 생각하면 그림 구석구석에 숨겨진 뜻밖의 상징들을 찾아낼 때마다 마주하는 지적 쾌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3000년 넘게 땅 속에 묻혀 있던 티라 섬 벽화들에선 그 시대의 풍속과 자연에 대한 비감까지 읽고, 18세기 화가 샤르댕의 그림에선 대혁명 전 고요와 불안을 함께 안은 프랑스인의 정서를 본다.
관람자 자신의 눈이 필요한, 까다로운 주제도 담았다. 많지 않은 주제를 비교적 긴 호흡으로 담아내고 있어 그림 하나에 한두 장짜리 설명을 얹은 대중서에 익숙해진 독자에겐 다소 묵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흥미로운 예를 곁들이며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뿔 달린 전설의 동물 유니콘을 사냥하는 중세 유럽의 양탄자 그림 ‘유니콘 사냥’과 아름다운 여인이 유니콘과 함께 등장하는 ‘유니콘과 귀부인’ 시리즈가 그런 예다. ‘유니콘 사냥’ 연작에서는 그림마다 A와 E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어 역사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 이니셜이 지칭하는 인물이 루이 12세의 왕비 안 드 브르타뉴라는 설, 아담과 이브의 머릿글자라는 설 등이다. 육체적 욕망과 정신의 순수를 상징하는 각종 상징으로 가득한 ‘유니콘과 귀부인’ 연작은 프랑스에 시집 온 영국인 왕비 메리 튜더와 그녀의 연인 찰스 브랜던을 그린 그림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이 1490∼1505년 사이에 그려진 반면 메리 튜더가 찰스 브랜던을 만난 시기는 1515년쯤이라는 주장을 만나게 되면 이런 해석에는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여전히 신비스로운 그림의 매력만큼이나 내력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노아 문명에서부터 18세기 파리까지 아우르는 모든 시대를 다루었으면서도 수박 겉핥기식의 통사 서술을 피하고 매 시대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었다. 서양의 미술사에 치우치지 않고 몽골·페르시아·인도·이집트 등 대중의 관심 밖이었던 나라들의 미술을 다룬 것도 강점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한 권의 책과도 같은 그림 한 장의 무게가 새삼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미술관은 그래서 ‘그림 읽는 도서관’이고 역사와 지식으로 가득찬 인류의 보물창고다. 책의 제목도 그제서야 이해된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