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씨네마 부산-PIFF 15년의 기록 (12)] 부산, 영화 보는 도시서 영화 찍는 도시로

입력 2011-03-31 18:06


1999년과 2000년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9년 영화 ‘쉬리’(강제규)가 620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을 25%에서 36%로 끌어올렸습니다.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가 다시 620만 관객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후 한국영화는 해마다 가속페달을 밟습니다. 2001년 ‘친구’(곽경택)가 800만,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와 ‘실미도’(강우석)가 각각 1100만, 2006년 ‘왕의 남자’(이준익)가 1230만, ‘괴물’(봉준호)이 1300만 관객을 동원해 1000만 관객 시대를 열었고,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63.8%까지 치솟았습니다.

한국영화는 해외로도 뻗어나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수상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2000년 칸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사상 처음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감독주간에 ‘박하사탕’(이창동), 비평가주간에 ‘해피엔드’(정지우),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오, 수정’(홍상수)이 초청받아 영화계를 열광시켰습니다. 2002년에는 ‘취화선’(임권택)이 칸영화제 감독상, ‘오아시스’(이창동)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과 신인연기상(문소리), ‘마리이야기’(이성강)가 안시애니메이션영화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처럼 99년과 2000년은 한국영화의 양적·질적인 성장을 이끈 원년입니다.

주유소 세트에 주유하러 온 차들

99년은 영화법과 제도가 크게 바뀐 해입니다. 영화진흥공사가 영화진흥위원회로 개편됐고, 1999∼2003년 영화진흥기금 1500억원이 정부 예산으로 조성됐습니다. 영화심의제도 또한 공연윤리위원회(1976. 5∼1997. 10),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1997. 10∼1999. 6)를 거쳐 99년 6월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바뀌면서 영화 검열이 사실상 폐지됐습니다. 영화 심의 완화, 소재 제한 철폐는 ‘쉬리’ ‘JSA’ ‘실미도’와 같이 ‘금기시’됐던 영화 제작을 가능케 했습니다. 결국 1000만 관객 시대를 열게 한 것이죠.

이 시기에 부산국제영화제도 한국영화의 성장을 직간접적으로 이끌면서 ‘동반성장’했습니다. 특히 ‘문화 불모지’ 부산에 영상산업을 점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먼저 부산영화제 산하에 ‘시네마테크부산’을 건립해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이며 아직까지는 유일한 시네마테크입니다. 97년 착공해 99년 8월 24일 개관한 이 건물은 160석 영사실과 DVD를 포함한 각종 자료, 기자재 등을 갖췄습니다.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교육, 영사 활동을 하면서 부산 영화운동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영상위원회 설립도 주도했습니다. 영상위원회, 즉 필름 커미션(Film Commission)은 영화 촬영을 유치하고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99년에 접어들면서 부산영화제의 지장(智將)인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부산예술대학 박종호 교수와 함께 부산영상위원회 설립을 부산시에 건의했고, 그해 6월 안상영 부산시장은 이용관 프로그래머(현 집행위원장), 오석근 사무국장(현 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의 안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습니다. 그곳 시장을 면담하고 필름 커미션의 활동 상황을 살펴본 뒤 그해 10월 개최된 부산영화제에서 부산영상위원회 설립을 발표했습니다.

부산영상위원회는 2000년 본격 활동을 시작하며 부산을 ‘영화 촬영 도시’로 바꿔 놓았습니다. 영화 ‘리베라 메’가 부산영상위원회의 첫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청 앞 광장은 이 영화를 크랭크인하는 행사장으로 꾸며졌습니다. 소방관, 소방차는 물론 소방헬기까지 무상으로 제공됐습니다. 요트경기장 정문이 헐리고 그 자리에 주유소 세트장이 들어섰습니다. 지나가던 차들이 진짜 주유소로 착각하고 들어오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당시 제작비가 30억원이던 이 영화는 영상위원회로부터 10억원에 해당하는 지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의 촬영팀들이 부산으로 몰려오기 시작했고 부산은 ‘촬영하기 좋은 도시’가 됐습니다. 지금도 매년 제작되는 한국영화의 20∼40%가 부산에서 촬영됩니다. 영상위원회 설립은 전주 부천 서울 등 각 도시로 파급됐고, 일본도 고베를 비롯해 주요 도시마다 생겨났습니다. 대만,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새로 탄생하는 필름 커미션들과 연계해 ‘아시아필름커미션 네트워크’를 창설, 그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심사위원장에게 돌솥 선물

99년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급성장하는 한국영화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됐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한국영화로는 처음 개막영화로 선정됐습니다. 큰 모험이었지만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뒀습니다(‘박하사탕’은 칸영화제 감독주간 등 많은 해외 영화제로부터 초청받고 수상했습니다). 판매금지 판정을 받은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무삭제로 상영됐습니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 등이 초대됐고, 유현목 감독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민여배우 크리스틴 하킴이 심사위원장, 중국 감독 지아 장커, 일본 여배우 모모이 가오리,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 사이먼 필드와 배용균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크리스틴 하킴은 큰 인기를 누리며 관객을 몰고 다녔고, 돌솥비빔밥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나는 돌솥 2개를 선물했습니다(하킴은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폐막작은 장이머우 감독의 ‘책상서랍 속의 동화’였습니다. 장이머우 감독과 유현목 감독, 원로배우 황정순 여사가 남포동에 핸드 프린팅을 남겼습니다.

제2회를 맞은 부산프로모션플랜(PPP)에는 ‘나의 사랑, 아프리카’(배창호), ‘수취인 불명’(김기덕), ‘리틀 청’(프룻 첸), ‘순환’(자파르 파나히), ‘시’(가린 누그로호), ‘북경자전거’(왕샤오 슈아이) 등 아시아 중량급 감독들의 프로젝트가 선보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들은 영화로 완성된 후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습니다. 2000년 ‘서클’이 베니스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 ‘리틀 청’과 ‘시’가 로카르노영화제 은표범상을, ‘북경자전거’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해 PPP의 위상은 불과 2∼3년 만에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요트경기장의 ‘雨中上映(우중상영)’

2000년 제5회 영화제에서는 인도의 부다뎁 다수굽타 감독의 ‘레슬러’가 개막작으로, 중국 왕자웨이 감독의 ‘화양연화’가 폐막작으로 상영됐습니다. 화양연화에서 열연한 장만옥과 양조위가 왕자웨이 감독과 함께 부산을 찾아 열광적인 환대를 받았습니다.

뉴 저먼 시네마 운동의 주역인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은 ‘스타 중의 최고 스타’였습니다. 개인적 사정으로 초청을 정중히 거절했던 그는 ‘삼고초려’ 이메일을 받은 뒤 영화 ‘밀리언 달러 호텔’을 들고 부산에 왔습니다. 그에게 보냈던 세 번째 이메일은 ‘23년 전 한국 독일문화원에서 당신 강의를 들었던 한국 젊은이들이 재회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자회견은 단 30분, 단독인터뷰는 사절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던 그였지만, ‘밀리언 달러 호텔’의 상영이 끝난 뒤 가진 관객과의 대화는 1시간30분이 지나도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 후 서울과 베를린에서, 또는 산세바스티안에서 만날 때마다 그는 부산이야기를 화제로 삼았습니다.

‘살롬 사네마-마흐말바흐 가의 영화들’이란 주제의 특별전이 열렸고, 여기에 참가한 이란의 마흐말바흐 가족의 인기도 대단했습니다. 아버지 모흐센 마흐말바흐는 이란을 대표하는 세계적 거장감독이며, 큰딸 사미라도 2000년 ‘칠판’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2003년 ‘오후의 5시’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감독입니다. 부인 마르지예 메쉬키니는 ‘내가 여자가 된 날’로 이해 부산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며 ‘뉴커런츠상’을 받았습니다. 아들 메이샴은 다큐멘터리 ‘사미라는 칠판을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막내딸 하나는 ‘이모가 아팠던 날’을 만들어 부산에 갖고 왔습니다. 만날 때마다 저를 ‘엉클’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당시 열 살의 하나는 이제 만나면 부끄러워하는 성숙한 여인이 됐지요.

5회 영화제에서 가장 감동적인 드라마는 10월 8일 일요일에 연출됐습니다. 영화제 개막 3일째인 이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오후에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오후 7시, 요트경기장 야외상영관에서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천사’가 빗속에 상영됐습니다. 상영을 취소할까도 생각했지만 우리는 강행했습니다. 3500명 관객 중 환불받고 돌아간 사람은 불과 100명, 나머지 3400명은 우비를 입고 끝까지 영화를 봤습니다. 부산영화제의 역사와 함께 두고두고 회자되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