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후폭풍] 원칙 버린 지역 선심에 정책·민심 모두 ‘누더기’
입력 2011-03-30 21:52
1. 정치논리에 춤추는 대형 개발사업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의 조찬 월례회동에서 “국책사업에서 정치적 논리는 배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13일 뒤인 30일 정부는 ‘경제논리’에 따라 동남권 신공항 사업을 백지화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정치논리를 앞세워 추진됐던 지방 공항들이 존폐기로에 처해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경제논리를 우선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지적은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그동안의 과정이다.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2006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하면서 거론되기 시작했고, 이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주목받게 됐다. 뒤늦게 경제논리를 내세웠지만, 분명히 시발점은 ‘선심성 사업과 표는 등가 교환된다’는 정치 논리가 개입돼 있었던 것이다.
이후 잘못된 공약이라는 판단이 섰다면 한시라도 빨리 바로잡았어야 했지만, 정부는 지방선거 등을 이유로 시간을 끌었다. 그 사이 동남권신공항 유치경쟁을 벌였던 대구·경북과 부산지역의 감정의 골은 파일 대로 파였다. 특히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은 낯 뜨거운 비방전까지 벌이며 지역감정을 부채질했다.
국책사업이나 대형 개발사업은 약속대로 진행된다면 뒤탈은 없다. 하지만 공약 자체에 정치논리가 개입돼 있다면 출발부터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국책사업 등에 정치논리가 끼어들어 지역갈등을 조장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 문제다. 동남권 신공항이 영남권의 문제였다면, 과학벨트는 전국을 쪼갤 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정부 예산만 3조5000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당초 이 대통령의 충청권 대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입지 재검토를 시사하면서 지자체 간 경쟁으로 비화했다. 현재 충청권뿐 아니라 경남, 경북, 경기, 전남, 전북까지 6개 지자체가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각 지역에 분산하자는 얘기까지 흘러나와, 광역지자체 거의 모두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가 끝내 두 곳으로 분산배치된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 때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럴 경우 당초 예상됐던 사업성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를 내건 경제특구는 처음에 인천·부산·광양권이 후보지였다. 그러나 다른 지역 국회의원들이 “어디는 주고 우리는 안 주느냐”고 들고 일어나 나중에 3곳을 추가하면서 모두가 맹탕이 돼버렸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지방 이전 문제도 난산이다. 혁신도시 추진과정에서 토지공사는 전북 전주, 주택공사는 경남 진주로 이전하기로 됐으나 LH로 통합되면서 전북과 경남 간 대결이 고조되고 정부는 차일피일 결정을 미뤄 문제를 키우고 있다.
국책사업은 아니지만 한때 부동산 시장의 ‘블루칩’이었던 뉴타운 사업도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은평뉴타운이 성공모델이 돼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이 봇물 터지듯 나왔고, 그 결과 서울과 수도권에서만 40곳이 넘게 사업대상지로 지정됐다. 하지만 현재 경기지역의 경우 23곳 중 3곳은 개발이 무산됐고 12곳은 뉴타운 취소를 놓고 법정다툼이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국책사업이 효율성보다는 대통령이나 유력 대선 후보의 한마디에 방향이 결정되는 구도가 계속되고 있다”며 “이러한 관행이 막대한 행정력 낭비와 사회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