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노석철] 로펌들의 前官 영입 경쟁
입력 2011-03-30 17:50
“과거에는 잘나가는 판사나 검사가 사표 내려고 하면 ‘왜 그만두려 하느냐’며 주위에서 붙들곤 했는데, 요즘엔 ‘어디로 간대?’라고 먼저 묻는다.” 요즘 법조계에서 나도는 우스갯소리다.
미래가 불투명한데 나가겠다는 선후배를 붙잡을 수도 없고, 오히려 높은 보수를 제시하는 로펌으로 떠나면 부러워하는 게 요즘 법조계의 세태라고 한다. 인사철만 되면 잘나가는 판검사들이 옷을 벗고 줄줄이 대형 로펌으로 옮기는 것도 통과의례가 됐다. 그들이 판검사로 경력을 쌓고 높은 보수를 찾아 떠나겠다는 데 막을 도리는 없다. 법조인뿐 아니라 고위공직자들도 퇴직 후 로펌에서 일하는 게 단골 코스가 됐다. 로펌이 그들을 채용하는 건 해당 분야에서 쌓은 전문성 외에도 갖고 있는 인맥과 영향력의 활용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이른바 ‘전관예우’ 관행이 크게 고려된다는 얘기다.
‘전관’들이 받는 보수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대충 미뤄 추정할 뿐이다. 감사원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마한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변호사로 일했던 6개월여 만에 6억5000만원을 벌었다. 1개월에 1억원꼴이다. 법조계에선 그의 보수를 놓고 “생각보다 너무 적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단독 개업을 했으면 훨씬 더 벌었을 것이란 의미다.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대법관 퇴임 후 로펌에 가면 1년에 100억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털어놨다. 실제 로펌에서 그런 제의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근거 없이 한 얘기는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민은 꿈도 꾸지 못할 돈이 오가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이를 보면 돈의 유혹을 뿌리치면서 현직에 남아있는 판검사들이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논란 속에 최근 국내 대형 로펌들의 ‘전관’ 영입 경쟁이 도마에 올랐다. 김앤장은 지난달 이재홍 전 서울행정법원장 등 전직 법관 12명을 무더기 영입했다. 최근에는 법조인 외에 임인규 전 국회 사무차장과 송학 전 방위사업청 계약관리본부장을 데려갔다. 앞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한철 헌법재판관도 김앤장을 거쳤다.
법무법인 화우는 최근 김대휘 전 서울가정법원장을, 태평양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영입했다. 로펌들이 각계 고위직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것은 법률시장 개방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도덕적으로 비난받더라도 우선 살고 봐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국내 변호사 업계는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오는 7월부터 발효돼 법률시장 개방이 시작되면 외국계 로펌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것이란 위기감이 크다. 국내 로펌 중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독일은 1998년 법률시장 개방 후 영·미계 로펌에 잠식당했다. 우리 법률시장도 독일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미계 로펌들은 이미 잠행을 시작했다. 국내 로펌에서 ‘인재 빼가기’에 돌입했고, 호텔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음성적으로 기업 자문을 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국내 로펌은 외국계 로펌이 정식으로 진출하면 고위직 법조인이나 공직자 출신들을 줄줄이 빼가는 ‘인재 사냥’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국계 로펌도 우리의 전관예우 관행을 적극 활용할 것이란 얘기다.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 법조계나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외국계 로펌의 로비스트로 팔려 갈 것이란 의미로 들린다.
우리 공직사회가 로비스트 양성소로 변질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지만 현재로선 이를 막을 아무런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최근 ‘전관 변호사 1년간 수임 제한’ 등을 담은 사법개혁안을 내놨지만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로비에 막혀 없던 일로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히려 논란이 뜨거워지면 로비스트법을 만들자는 얘기나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노석철 사회부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