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진홍] 과학기술과 국가

입력 2011-03-30 20:57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리비아 전쟁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리비아 전쟁. 요즘 이목을 끄는 국제뉴스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20일째를 맞았으나 여전히 위협적이다. 리비아에 대한 다국적군 공습은 카다피의 저항에 부닥쳐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단할 수 없다. 매일매일 진전되는 상황들이 관심사다. 동시에 이 두 가지 뉴스는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경우 ‘인류에게 과학기술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삶의 질은 지속적으로 향상돼 왔다. IT(정보), BT(생명과학), CT(문화산업), ET(환경), NT(나노), ST(우주) 등 각 분야의 기술발전이 있었기에 우리의 삶은 나날이 더 풍요롭고, 더 안전하고, 더 건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1950년대 중반, 원전이 처음 등장한 것도 삶의 질 향상과 연관돼 있다. 원전은 석탄이나 석유 등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보다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을 뿐더러 연료가격 대비 효율이 높다. 그래서 지구촌 곳곳에 세워졌고, 현재 건설 중인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 세계를 방사성 물질 공포에 몰아넣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과학기술이 언제나 인간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시켜 준다. 삶을 윤택하게 할 수도,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는 과학기술의 이중성이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첨단 기술의 응집체인 원자폭탄도 마찬가지다. 원자폭탄 개발 목적은 비교적 순수했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히틀러를 응징하기 위해 제조됐다. 하지만 정작 처음 사용된 곳은 독일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연합군은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승리를 거뒀다. 승리의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지금도 원자폭탄이 평화를 담보하기는커녕 인류의 항구적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3차 세계대전에 어떤 무기가 등장할지 모르지만, 4차 대전에선 돌과 막대기로 싸우게 될 것이다”고 했다. 각국 지도자와 과학자들, 특히 신무기를 개발해 먹고사는 이들이 곱씹어야 할 의미심장한 말이다. 과학기술이 독(毒)이 되지 않도록 세계인들 모두가 세심하게 신경 써야 마땅하다.

리비아 전쟁이 던지는 질문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카다피는 마치 ‘짐이 곧 국가’라는 식의 행태를 보이며 40년 넘게 철권통치를 해 왔다. 막대한 부(富)도 긁어모았다. 그러면서 행여 반대세력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쿠데타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군대 규모를 최소화하고, 대신 용병을 고용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카다피가 국민들을 ‘노예’ 정도로 여겨온 것도 재확인됐다.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국민들을 전투기와 탱크까지 동원해 버젓이 학살했다. 자유를 달라는 자국민들을 반란세력 혹은 적으로 규정하며 미사일과 총알을 퍼부은 이를 과연 지도자라 할 수 있는가. 권력욕에 눈이 먼 탐욕스런 광인(狂人) 정도로 부르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짐이 곧 국가’라고 외치던 루이 14세가 프랑스혁명을 낳았듯 카다피가 온갖 폭력수단을 갖고 있더라도 궁극적으로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전제는 있다. ‘카다피의 국가’를 반드시 무너뜨리고, ‘국민의 국가’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리비아 필부필부(匹夫匹婦)의 굳은 각오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 다국적군이 큰 힘이 되고 있지만, 새 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다국적군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정부의 목적은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권 보호에 있다. 이에 반한다면 저항은 당연하다”고 했다. 권력자가 위임받은 권력을 위임자 뜻과 다르게 사용하면, 권력자는 소환돼야 하고 권력은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말도 했다.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단상들이 새삼 머릿속에서 맴도는 요즘이다.

김진홍 편집국 부국장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