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열정 이긴 냉정’ 한국 우승

입력 2011-03-30 17:30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9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 최강전이 지난 22일부터 시작됐다. 연초에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는 한국의 첫 번째 주자 문도원 2단이 7연승을 거두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2008년 프로가 됐지만 그동안 특별한 성적을 내지 못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에 이번 연승은 더욱 신선했다. 한·중·일 3국의 여자대표 5명이 출전하는 정관장배는 1라운드에서 한국 5명, 중국 2명, 일본 1명이 남아 한국의 우승이 유력시 되었다.

두 달이 지나 이어진 2라운드. 은근히 문도원 2단의 10연승을 기대했다. 하지만 각국의 대표선수들이 모인 만큼 승부가 쉽게 결정되지 않았다. 문도원 2단은 중국의 차세대주자 탕이 2단에게 패해 아쉽게 7연승에서 멈춰 섰다. 이제 ‘중국의 반격인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칠 때 복병이 나타났다.

4명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며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던 일본팀의 마지막 주자인 요시다 미카 8단이 탕이 2단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그나마 체면을 세웠다. 탕이 2단을 껄끄러워하던 한국 팀에는 기쁜 소식이었다. 김미리 초단이 손쉽게 요시다 미카 8단을 따돌리며 한국과 중국의 대결로 압축됐다. 한국은 박지은, 박지연, 이하진, 김미리 4명의 선수가 남았고 중국은 루이웨이나이 9단만 남아 4대 1의 압도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천명의 나이를 바라보는 루이 9단은 얼마 전 벌어진 여류명인전과 여류국수전을 우승한 국내 여류 최강자. 한국이 수적인 우세로 여유는 있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루이 9단은 2연승에 도전하는 김미리 초단을 꺾었고, 여세를 몰아 이하진 3단과 박지연 2단까지 물리쳤다. 신예 기사들의 열정과 패기만으로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루이 9단을 이기기에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양팀이 1명씩만 남은 벼랑 끝 상황이 연출된 것.

한국의 주장 박지은 9단과 중국의 주장 루이 9단의 대결이었는데 2008년 원양부동산배 결승전 이후 오랜만의 대국이었다. 당시 박지은 9단이 2대 0으로 승리해 우승을 차지했다. 국내기전에서는 항상 루이 9단의 성적이 좋았지만 세계대회에서는 박지은 9단이 한 수 위였다. 하지만 쉽게 우승하리라 여겼던 승부에서 마지막까지 몰린 상황이라 박지은 9단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정한 승부사는 위기의 순간에 그 진가를 발휘한다. 박지은 9단의 가슴은 차가워졌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침착하며 냉정했다. 그리고 혈기왕성한 젊은 기사들을 물리치며 뜨겁게 불타오르던 루이 9단을 단칼에 제압하며 한국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