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 화훼시장, 꽃값 반토막에도 발길 뚝… “이러다간 전부 망할 판”

입력 2011-03-29 21:57


“물가가 치솟아서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누가 꽃 사서 식탁에 놓을 생각 합니까. 정부에선 3만원 이상 축하 난(蘭) 받는 공무원들 징계한다고 하지, 거기에다 일본 지진 때문에 수출 물량까지 내수시장으로 풀린다고 하니…. 갑갑합니다.”

29일 서울 양재동 농수산물유통공사(aT) 화훼공판장에서 만난 김철민(47)씨는 시장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음력 2월은 결혼, 개업 같은 축하행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화훼업계에선 비수기로 꼽힌다.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가 3만원 이내에서만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공무원 행동강령을 철저히 시행하겠다고 밝힌 뒤 축하난 주문도 뚝 끊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일본 대지진 때문에 국내 화훼 농가의 수출길이 막혔다. 수출 물량이 내수시장으로 들어오면 꽃 가격이 급락해 시장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재동 공판장에는 장미, 국화, 백합 등을 파는 생화 업체 120여곳이 있다. 자정에 문을 열어 오후 1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이날 꽃을 사러 오는 손님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매장 직원들은 영업시간이 끝나고 더 바빠졌다. 팔리지 않고 남은 꽃이 시들지 않도록 겹겹이 포개 물을 주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매장을 운영하는 정형렬(69)씨는 “꽃값이 한 달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는데도 사러 오는 손님이 없다”면서 “손님이 없으니 가격은 더 내려가고 내려가도 팔리지 않으니 파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이모(53)씨는 “요즘엔 하루 20만원 벌기도 힘들다”며 “사정이 괜찮았을 때와 비교하면 매출이 10분의 1로 떨어져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푸념했다.

aT에 따르면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 거래되는 장미 1속(10송이)의 평균가격은 지난 2일 4616원에서 25일 2266원으로 반토막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3169원)과 비교하면 28% 하락했다.

김병찬 절화(가지째 꺾은 꽃) 담당 경매사는 “화훼 농가는 일본에서 입학, 졸업, 승진, 춘분 등 꽃 수요가 많은 3∼4월에 수출이 몰리는데 지진 때문에 행사가 취소되는 경우가 많아 물량을 해소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수출 물량이 내수로 전환되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심리에 더해져 가격이 급락하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영응 화훼공판장 중도매인연합회 이사는 “재고가 남아도는 상황인데 물량이 늘면 가격 체계가 무너지는 등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 들어 이달 넷째 주까지 일본 장미 수출량은 전년보다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 임실에서 장미 농가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지난주 일본 수출 가격이 1본(송이)당 10엔으로 바닥을 쳤다”며 “운송료와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남는 게 없는 정도가 아니라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 들어 가격이 20∼50엔으로 반등했지만 평상시 80∼100엔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김씨는 “가격 급락을 막기 위해 출하 억제를 해왔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지난주부터 국내 도매 및 위탁시장에 수출 물량을 조금씩 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농협과 한국화훼생산자협의회는 일본 대지진 후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화훼 농가들을 돕기 위해 매주 화요일을 ‘꽃 사는 날(花요일)’로 정하고 농림수산식품부 및 유관기관과 함께 범국민 꽃 소비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aT도 30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양재동 aT 화훼공판장에 ‘수출용 장미 특별판매장’을 운영한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