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5共은 무엇이었나] 박철언 전 장관 인터뷰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인 것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입력 2011-03-29 18:41
1980년 6월 당시 서울지검 박철언 검사는 파견 명령을 받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근무를 시작한다. 신군부의 핵심 인물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고종사촌 처남이었지만 순수 법조인을 꿈꿨던 한 검사가 제5공화국에 참여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국보위 법사위원으로서 7년 단임제를 명시한 5공 헌법을 공포하는 데 힘을 보탰고, 이후 5·6공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은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보위 참여에 대해 “공직자로서 파견 명령을 거부할 수 없기도 했지만 역사의 부름이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한데도 나라를 운영할 만한 주체가 보이지 않아 본인이라도 이를 바로잡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그는 앞서 79년 신군부의 12·12 군사 쿠데타 직후에도 보안사의 파견 요청이 있었지만 거부했었다고 털어놨다.
5공 당시 대통령 정무·법률비서관과 안기부장 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했던 그는 5공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고 했다. 박 전 장관은 “광주의 비극이라는 멍에를 안고 출범했고 권위주의 통치, 인권탄압의 부정적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당시 상황을 도외시한 채 30년 전을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5공의 긍정적 성과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물가 안정을 바탕으로 파탄 직전이었던 경제를 회복시켰고, 서울올림픽을 유치해 성공적으로 준비함으로써 민족적 자긍심을 높였다는 것이다. 대통령 단임제를 실천하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함으로써 민주 발전에도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전자산업을 육성해 한국이 인터넷·전자 강국으로 가는 터전을 마련했고, 행정구조개혁을 통해 정부사업의 효율성을 제고한 점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행금지 철폐, 중·고 교복 자율화, 해외여행·유학 규제 완화 등 행정개혁 정책도 성과라고 덧붙였다.
박 전 장관은 특히 대북 및 외교 부문에서 5공의 역할을 강조했다. 남북관계와 북방정책의 초석을 마련한 게 5공 정부였다는 것이다. 그는 “83년 KAL기 추락사고와 아웅산 폭탄 테러가 겹치면서 남북은 전쟁 직전의 상황이었지만 5공 정부는 이듬해 북측의 수재물품 제공에 응하면서 남북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통 큰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남측 수석대표를 맡아 5공 기간 동안 33차례의 남북 비밀회담을 하면서 남북 교환방문단을 성사시키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역할을 했다. 6공 시절인 91년 남북 총리 간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비핵화선언을 했던 초석이 이때 다져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은 “북방정책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으로 재직하며 별도 팀을 만들어 당시 소련과 중국 및 다른 동구권 국가들을 연구하면서 북방정책의 터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5공 당시 민주화 요구에 대해선 “학생들과 재야의 요구는 이해할 수 있었고, 역사발전의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당시는 정치적 자유보다는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급격한 민주화보다는 산업화의 완성이 더 중요했던 시기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중산층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산업화를 외면하고 민주화에 더 역점을 뒀다면 나라의 미래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우리의 현대사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경쟁·견제·투쟁의 과정”이라며 “그 과정에서 산업화·민주화를 모두 최단 기간에 완수했기 때문에 오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최근의 대북·외교 정책에도 훈수를 뒀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국가안보는 완벽하게 하되 대북정책에선 좀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2012년은 우리나라와 미국·중국 모두 정권이 바뀌는 권력 변동기로 특히 중요하다”며 “북한 역시 김정은 체제를 강화해 안착시키려 할 것인 만큼 엄청나게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내년의 대북 및 외교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이란 전망이다.
특별기획팀=정승훈 김지방 정동권 기자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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