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5共은 무엇이었나] 외교부 문서 통해 본 초기 상황… “광주서 일어난 사태 심히 우려”
입력 2011-03-29 18:54
“우리는 한국 남쪽의 광주시에서 일어난 내분 사태를 심히 우려하는 바다.… 그러나 한국인의 내정 문제가 분명한 광주 사태에 미국이 개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980년 5월 27일 미 국무부 톰 레스턴 대변인이 한 말은 5공 정권의 탄생을 바라보던 미국의 태도를 압축해 보여준다.
외교통상부는 지난달 80년 당시 외교문서의 일부를 일반에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에는 미국이 신군부의 등장을 마뜩찮아 했던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국무부는 80년 5·17 쿠데타 직후인 1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도 “한국에서의 계엄령 전국 확대, 대학교 휴교, 정치 및 학생 지도자 체포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국무부는 북한 동향도 언급했다.
“현 시점에서 북한의 비정상적인 병력 이동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북한이 당장에 한국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거는 갖고 있지 않다.”
신군부가 비상계엄 확대의 명분으로 내세운 ‘북괴남침설’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주한미대사관 공보부는 이 같은 국무부 브리핑 내용을 ‘참고자료(For the Record)’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배포했다.
그 해 6월 30일 광주 미 공보관에 한국군 소령 2명이 권총을 차고 들어왔다. 총검을 든 병사 3명도 대동했다. 이들은 ‘뉴스위크’ ‘타임’ 잡지에 광주 민주화운동과 김대중씨 구속 관련 기사가 실려있는지 확인하고 돌아갔다. 다음 달 9일에는 서울의 미 문화원 도서실에 뉴스위크의 광주 관련 기사(6월 9일자)가 복사본으로 전시된 것을 당시 외교부 북미담당관실의 김하중 서기관이 확인, 보고했다. 미 대사관은 군인의 진입에 항의했고, 한국 정부는 검열·삭제된 기사를 일반에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특별기획팀=정승훈 김지방 정동권 기자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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