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프리 2011 시즌 개막… 호주 현장을 가다

입력 2011-03-29 17:54

그날, 멜버른 도심은 F1 굉음에 빠졌다

국제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 원(F1) 그랑프리 2011 시즌 개막전이 27일 오후 3시(현지시간) 호주 멜버른 앨버트 파크 서킷에서 열렸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불릴 정도로 명성을 자랑하는 F1 대회는 호주 그랑프리에서도 대회가 열린 나흘간 무려 35만명(주최측 추산)이나 몰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무색하리만치 멜버른 시내와 경기장 주변은 평소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교통체증도 없었다. 관람객들은 충분한 휴식공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며 스피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도심에서 펼쳐진 F1, 교통체증조차 없어

호주 그랑프리는 전남 영암에서 열린 코리아 그랑프리와 달리 서킷(자동차 질주도로)이 도심에 위치해 있다. F1 그랑프리는 우리나라 영암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전용 경주장에서 펼쳐지지만 호주 그랑프리 서킷은 도심에 있는 앨버트 파크 공원 내 호수 주변 도로를 사용했다. 평소에는 일반 도로로 사용된다. 하지만 대회가 다가오면서 세계 최고 권위의 F1 서킷으로 탈바꿈한다. 이곳도 지난 2월부터 차량을 막고 벽과 관중석을 설치했다. 대회가 끝나면 차량이 피트 스톱(타이어를 교체하는 것)을 하기 위해 설치된 공간인 피트 건물과 메인 그랜드 스탠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철거돼 언제 이곳에서 F1이 열렸는지 모를 정도로 일반 도로로 돌아간다는 게 호주 그랑프리 조직위원회의 설명이었다.

지난해 10월 전남 영암에서 열린 코리아 그랑프리에서는 총 관중 16만5000명(주최측 추산)이 몰려 극심한 교통대란을 겪은 만큼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35만명의 인파가 몰린 앨버트 파크에서도 심각한 교통체증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경기장 입구 주변은 전혀 북적거리지 않았다. 주변 도로를 달리는 일반 차량은 오히려 멜버른의 다른 도심 지역보다 더 줄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주 그랑프리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10개로 나뉘어 있어 관람객들이 분산돼 경기장에 들어갔다. 지난해 한국 대회는 관람객이 단 한 곳으로만 통과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구조였다. 특히 교통수단으로 눈에 띄는 것은 전차(Tram)였다. 멜버른시는 대회가 열리는 나흘 동안 멜버른 중심 상업지구(CBD)와 앨버트 파크 서킷을 오가는 전차 3개 라인을 모두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기존 앨버트 파크 주변 주차장은 서킷으로 사용되거나 폐쇄됐다. 전차 정거장은 서킷의 10개 입구 중 7개 입구 앞에 있었다. 연습 레이스가 펼쳐진 지난 24∼25일에는 2분 간격, 예선·결승 레이스가 열린 26∼27일에는 매 1분마다 전차가 관람객을 실어 날랐다. 전차 정거장과 경기장 입구는 걸어서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버스나 택시 정거장보다 가까웠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전차를 이용하거나 이곳이 원래 시민들이 쉬는 휴식공간이었던 만큼 운동을 한다는 기분으로 가벼운 복장으로 천천히 걸어서 경기장을 찾는 모습이었다.

자유롭게 속도와 굉음을 즐기는 관람객들

출입문을 통과하자 맥라렌, 페트로나스, 페라리, 레드불 등 F1 선수들의 소속팀에서 마련한 기념품 가게가 줄을 이었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팀과 호주 그랑프리 로고가 새겨진 옷, 점퍼, 모자를 사는 데 여념이 없었다. F1 소속팀과 호주 그랑프리 로고가 동시에 새겨진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은 경기장 내에 마련된 부스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선수·팀에 대한 애정과 함께 호주 대회를 다녀왔다는 자부심을 표시하기 위해 이 같은 기념품을 산다는 게 대회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결선 레이스가 시작되자 고막이 찢어질 듯한 F1 머신 특유의 굉음이 관람객들을 흥분케 했다. 그들은 관중석에서 엄청난 스피드의 F1 머신의 모습을 쳐다봤고, 일부는 아이패드 등을 이용해 중계 방송과 현장을 계속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일부 연인이나 어린이와 함께 온 관람객들은 관중석 뒤에 마련된 전광판을 보며 F1을 즐겼다. 서킷 위치가 공원이기에 바닥이 온통 잔디인 만큼 이들은 음료수나 맥주를 들고 앉거나 아예 드러누워 선수들의 레이싱이 방송되는 전광판을 보며 자기 팀을 응원했다.

자국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멀리 유럽과 아시아 등에서 온 관람객들도 많았다. 일부 관람객들은 조국의 깃발을 온 몸에 두르거나 깃발 모양의 가발을 두르며 자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실제 9위로 출발한 이탈리아의 필리페 마사(페라리)가 12라운드에서 한때 6위까지 앞지르자 이탈리아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이탈리아에서 온 한 관람객은 “마사를 응원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가족 3명과 함께 여기까지 왔다”면서 “이탈리아에 F1 선수가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F1 선수는 단 24명밖에 없다. 한국인 출신 레이서는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왔다는 마크 리브리아는 기념품 가게에서 영국 출신 선수 루이스 해밀턴의 사인이 담긴 모자와 셔츠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리브리아는 “해밀턴이 제바스찬 페텔에 뒤져 아쉽지만 F1의 묘미를 물씬 느낀다”며 “F1의 매력은 노이즈와 스피드”라고 전했다. 그에게 지난해에 이어 올 10월에도 한국에서 F1 대회가 열린다고 하자 “한국에서 하는지 아직 몰랐다”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텐데 비용이 많이 들어 난 가지 못할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레이싱이 시작된 지 1시간40분 남짓 지난 끝에 페텔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올 시즌 첫 F1 대회인 호주 그랑프리가 막을 내렸다. 대회가 끝났는데도 시작과 마찬가지로 출구는 그리 붐비지 않았다. 3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경기가 끝난 후의 혼잡함보다 오히려 덜했다. 관람객들은 F1 대회 결과를 두고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전차를 타거나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멜버른=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