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송주명] 일본 대재앙 누가 책임지나
입력 2011-03-29 17:45
2011년 3월 11일은 일본에게 잊혀질 수 없는 ‘큰 시련의 날’이 됐다. 지진 단층연구를 하는 한 지질학자는 이번 동북대지진을 1000년 만의 대지진으로 평가했다. 일본이 온갖 지혜를 모아 세워온 지진대책들과 수많은 생명을 시커먼 ‘쓰나미(津波)’가 거침없이 휩쓸어버렸다. 도호쿠의 아름다운 해변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참으로 암담하다. 희생자들과 피해 극복을 위해 분투하는 일본 국민에게 애도와 경의를 표한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대재앙으로 번지고 있다. 기준치의 수천배에 이르는 방사선이 누출되고, 오염도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피폭 공포가 일본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와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경악스러운 일은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사태가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도쿄전력이나 일본 정부, 누구 하나 정확한 정보 제공은 물론 책임 있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기업 이익논리가 부른 참사
우리는 이 대재앙을 통해 전후 일본인들이 발전시켜온 일본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미국의 일본연구자 찰머스 존슨은 30여년 전에 일본사회를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라고 명명했다. 그가 본 일본사회는 국가가 전략적 목표를 제시하고, 정부와 민간이 효과적으로 미세한 부분까지 조정해 정교한 발전의 방도를 만들어가는 네트워크 사회였다.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일본사회도 많은 부분 변화했지만, 그 본질만은 지금까지 유지돼 왔다.
그러나 일본형 시스템이 대재앙 속에서 무력화되고 있다. 첫째, 예상 밖의 거대한 재앙 속에서 정치적 지도력이 마비되고, 잘 짜여진 매뉴얼과 지침에 대한 맹신이 도리어 피해를 더욱 키우고 있다. 원전 폭발은 대규모 인간파멸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당연히 초기에 특단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리더십은 보이지 않고, 이미 시간을 허비해 통제불가능한 상황에서야 뒤늦게 인간특공대를 투입했다. 처참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둘째, 전후 일본사회는 민간기업과 정부의 협력을 통해서 경제를 발전시켜 왔다. 전력산업의 경우 10개의 독점적 사기업들이 지역별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원전 관리업체인 도쿄전력은 원전설비를 계속 사용하겠다는 욕심으로 초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부에도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사기업의 무책임한 이익논리 앞에서 정부의 지도력은 무력화됐다. 사적이익에 집착한 기업행동이 얼마나 많은 인류를 참혹한 위기로 몰고 가고 있는가? 이는 인간의 생존과 생명에 직결되는 전략 산업을 민간기업의 이윤논리에 더 이상 맡길 수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원전 대재앙은 에너지위기와 기후변화 대응의 명분하에 근거 없이 넓게 퍼진 ‘원자력 안전신화’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그간 원자력 산업 및 정책 종사자들은 부분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장담해 왔다. 그러나 일본 대재앙은 거대한 자연력 앞에서 ‘안전관리신화’가 허망한 것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원전 통제 협력’ 추진해야
이 상황에도 우리 정부는 원자력을 일방적으로 확대하는 전력수급계획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에너지공급을 위해 대대적으로 서해연안에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3개국이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폭탄’을 키워가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대재앙은 원전문제가 결국은 동아시아 시민 전체의 생명의 문제이자 국가 존립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생명과 평화공동체의 관점에서 시민과 국가가 참여해 원자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동아시아 원전 억제운동’과 ‘동아시아 원자력 통제협력’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송주명 한신대 교수 일본지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