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파도치는 영성

입력 2011-03-29 17:40


빵과 다이아몬드

솔로몬의 영광이 그 시대에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스바 여왕이 은, 금을 싸가지고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찾아왔겠는가? 예수께서는 그런 솔로몬을 언급하시면서 “나는 솔로몬보다 더 큰 자”라고 말씀하셨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42)

솔로몬의 지혜로운 소리를 듣기 위해서 스바 여왕이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그 소리를 들으려고 사정했다면, 솔로몬보다 더 큰 소리를 하고, 더 지혜로운 소리를 하고, 더 생명이 넘치는 소리를 하고 있는 예수께는 왜 와서 들으려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솔로몬의 영광은 아무리 찬란해도 저 들에 핀 백합화 하나만도 못하다고 하셨는데(마 6:29),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위대하고 찬란한 영광의 목소리와 축복이 예수께 있는데 왜 예수께로 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예수께서 주시는 영광과 축복이 무엇일까? 바로 우리 죄를 사하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 수 있는 하늘나라를 주는 것이다. 그런 영광과 축복을 주려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는데 왜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느냐는 말씀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분명한 영적 가치를 안다면 그 가치를 창출하고 추구하고 소유하기 위해서 계속 전진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영생으로 주님 앞에 서는 날, 면류관과 위대한 상의 영광이 찬란하게 빛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그 가치를 분명히 알고 내가 손에 쥔 것이 과연 육의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것인지를 분명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날에 내가 이 땅에서 얼마나 영적 생활을 했으며, 얼마나 육신의 소욕을 이겼으며, 얼마나 세상의 정욕을 이겼으며, 얼마나 세상의 가치보다 신령한 영적 가치를 크게 여겼는지를 심판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지는 이유는 세상의 가치와 영적인 가치를 잘 비교하지 못하고 선택하기 때문이다. 아주 큰 다이아몬드와 맛있는 빵이 있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아마 배고픈 어린아이라면 빵을 선택할 것이다. 어려서 경제적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당장 배부르게 하지는 못하지만 엄청나게 값나가는 다이아몬드는 버리고 당장 배고픈 것을 해결해 주는 빵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와 똑같이 영적인 세계가 있고, 영원한 천국과 영생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많은 기독교인이 이 땅에서의 삶을 우선한다. 말은 하늘의 신령한 ‘다이아몬드’가 최고라고 인정하는데, 손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빵’으로 가고 있다. 빵 때문에 영원히 살 생명을 쉽게 버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가? 육신대로 사는 사람은 육신을 행복하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자기에게 가장 큰 행복이요, 축복인 줄 안다. 그러나 성경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나 허망하고 가치 없는 것에 잘 속는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치 없는 것에 유혹되지 말고, 영원히 가치 있는 것을 꼭 움켜쥐고 후회 없는 영적 생활을 할 수 있는 복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윤석전 목사 (연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