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日 대지진 나흘 전… 훗카이도 ‘봄의 나래’
입력 2011-03-29 18:06
세계최대 두루미 도래지 쿠시로 습지
홋카이도의 삼월은 여전히 겨울 진행형이었다. 삿포로(札幌)에서 쿠시로(釧路)로 향하는 차창 밖은 눈 덮인 산과 들, 꽁꽁 언 호수 너머로 다가올 대재앙을 예견하지 못한 듯 아직도 곤히 겨울잠에 빠져 있었다.
김포도시공사와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기 나흘전인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두루미(丹頂鶴) 세계 최대 도래지인 일본 홋카이도의 쿠시로 습지 국립공원을 돌아 보았다. 다행히 쿠시로습지는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있어 쓰나미의 참사를 면했다.
김포시는 고촌읍 일대에 복합문화도시 ‘한강시네폴리스’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매년 고촌읍을 찾아오는 겨울진객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의 안정적인 대체 취·서식지 조성을 위해 전문가들과 함께 보전방안을 수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침 햇살에 젖은 날개를 말리며 몸단장을 마친 두루미 가족이 보존구역 내의 셋쓰리가와 강을 벗어나 먹이터로 무리 지어 출발한다. 맑고 투명한 하늘을 유영하는 두루미의 날갯짓이 눈부시다.
“두루륵, 두룩 두룩”
일본 야생조류보호협회의 보호지역인 ‘센크츄아리’에 사뿐히 내려앉은 두루미 무리가 날씬한 목을 빼고 합창을 시작한다. 월동기 끝무렵이자 번식기의 시작인 요즈음 암컷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수컷들의 춤사위가 현란하고 모델처럼 우아한 걸음걸이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진가들에게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두루미 대부분은 쯔루미다이, 센크츄아리, 아칸국제학(鶴)센터 등 겨우내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먹이터에서 겨울을 난다. 특히 아칸국제학(鶴)센터에서는 홋카이도 내 번식지로 이동하는 두루미의 영양보충을 위해 하루 한번 생선을 공급해 주는데, 눈치 빠른 흰꼬리수리, 솔개, 참수리 같은 맹금류와 펼치는 먹이경쟁이 탐조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람사르조약 등록 보호습지인 이곳 역시 1900년도 초반에는 무분별한 수렵과 난개발에 따른 서식지 감소 등으로 두루미가 거의 멸종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지역주민들이 겨울철 먹이주기 및 철저한 서식지 보호 활동에 나서 서서히 개체수를 회복했고, 현재는 1100여 마리에 이른다.
동행한 경희대 환경학과 김정수 박사는 “이번 대지진은 사람 못지않게 생태계도 큰 피해를 입혔다. 이같은 재난으로부터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부 개체를 한국과 일본의 타지역 등으로 유도해 분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지금 한반도의 두루미들은 월동을 끝내고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번식지로 이동 중이다. 김포시를 비롯해 한강하구를 따라 안정적인 먹이터와 쉼터를 마련해 주는 노력이 지속된다면 사계절 도심 빌딩 숲 속을 날아다니는 두루미 무리의 모습이 상상 속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쿠시로(홋카이도)=사진·글 곽경근기자 kkkw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