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FP “43만t 지원 시급”… 정부 “실상 파악 허술”
입력 2011-03-28 22:35
北식량지원 놓고 정부·국제기구 시각차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대표단이 28일 우리 정부 당국자들과 협의를 갖고 대북 식량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설득 작업을 시작했다. 27일 오후 방한한 WFP 대표단은 이날 농림수산식품부를 시작으로 29일 총리실, 30일 통일부와 외교통상부 당국자와 연쇄 접촉한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로서 대규모 식량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WFP는 북한에 43만t의 식량이 시급히 지원돼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는 북한의 ‘엄살’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 VS WFP 대표단=외교부 당국자는 “(WFP 보고서는) 통계적으로 허술하다는 시각이 있다. 신뢰성 있는 지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라면서 “북한이 혹한기와 가뭄 등으로 긴급한 사정이 생겼다고 하니까 (국제 기구들이) 좀 급하게 조사한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권위 있는 국제 기구의 보고서를 ‘근거 없다’고 일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당초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 계획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국제 기구들의 현지 실사 보고서를 보고 최종 결정하겠다는 다소 모호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WFP 등이 주민 600만명 이상에게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자 북한 식량 상황이 과장됐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WFP로서는 국제사회의 대대적인 대북 지원을 이끌어내려면 한국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한국 정부의 호응 여부가 국제사회 지원 규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한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규모 식량 지원에 나서기는 부담스럽다.
◇정부의 ‘인도주의’, 진정성 있나?=정부는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중단한 영유아 등 취약계층 지원을 재개할 계획이다. 그러나 품목은 분유, 이유식, 두유, 영양죽, 항생제를 비롯한 의약품 등으로 제한할 방침이다. 미국 정부 등 국제사회가 인도주의와 정치 문제를 분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 따라 마지못해 대응하는 모양새다.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을 막는 이유는 간단하다. 식량 지원이 3대 권력세습과 핵 개발을 돕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북한의 식량사정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북한 당국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들어가는 재원을 돌리면 민생고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원은 내년 강성대국 완성을 앞둔 ‘비축용’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태로 인해 대규모 식량 지원에 대한 국민 여론 또한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러나 북한은 주민 사정과는 상관없이 핵 개발과 3대 세습을 진행할 것이므로 식량 지원을 막는데 따른 피해는 결국 주민에게 돌아간다는 반론도 있다. 인도주의에 따른 지원이라면 식량만큼은 정치와 분리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북한 식량 상황을 정치 논리에 이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정부는 얼마 전까지 북한 주민이 굶주리고 있어 붕괴할 것이라더니 갑자기 식량 사정이 나쁘지 않다고 손바닥 뒤집듯 했다”면서 “북한에서 식량은 매년 100만t가량 부족한데 국제 곡물가가 상승해 더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식량 구애 통할까=북한은 전 세계를 상대로 식량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재외공관들에 할당량을 부여했으며, 아프리카 빈국과 조선족은 물론 과거 관계가 껄끄러웠던 국가에까지 손을 벌리고 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을 압박하겠다는 외교적 성격이 강하다. 또 인도주의 성격을 갖는 식량 지원은 미사일 시험 발사나 핵 개발로 고립된 북한과 국제사회가 교류를 재개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식량 분배의 투명성 결여다. 북한은 최근 이뤄진 국제 기구의 북한 실사에 자강도 등 공개하지 않았던 장소도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과거 국제 기구의 식량 분배 모니터링 요원에 대해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등 모니터링을 사실상 방해해 왔다. 북한 당국의 고의적인 모니터링 방해로 미국은 2009년 4월 50만t의 대북 쌀 지원을 진행하다 17만t만 제공하고 중단했다. 미국은 식량지원단 추방 당시 남겨졌던 식량 2만1000여t의 임의 전용과 관련, 북한 당국에 소명을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