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 세계적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 “판소리, 처음 듣고 매료”
입력 2011-03-28 19:31
“한국의 판소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한국 내에서도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것 같은데, 판소리와 같은 문화적 자산이 박물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77)는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창극 ‘수궁가’ 제작 발표회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수궁가’는 프라이어가 연출은 물론 무대, 의상, 조명 디자인까지 맡은 작품으로 오는 9월 8∼1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12월 독일 부퍼탈 시립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2013∼14년에는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독일 최고 문화훈장,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폴란드의 최고 문화훈장을 받은 그는 50여년간 150여편의 오페라를 연출한 ‘오페라 거장’이다. 그가 한국의 판소리에 빠진 데는 한국인 부인 에스더 리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임연철 국립극장장의 초청으로 부인과 함께 ‘춘향 2010’을 보고 생애 처음으로 들은 판소리에 매료됐습니다. 판소리는 인간의 본질적인 언어와 음악이 담겨 있는 완전한 예술이기 때문에,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굉장한 감동을 받았지요.”
프라이어는 “판소리는 우리에게 삶이 무엇인지 얘기한다. 불안, 꿈, 두려움, 유토피아 등 예술이 다뤄온 주제들이 다 들어있다”고 극찬했다. 반면 서양 오페라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사실을 계속 모방해서 보여주는 끔직한 형태가 돼 버렸다. 유럽은 문화적으로 이미 다 소진된 것 같다”면서 “피카소가 아프리카의 예술을 자기 작품에 녹여냈듯이, 다른 문화와 교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마이크를 쓰지 않고, 서양 오케스트라도 동원하지 않을 예정이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판소리의 형식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이번 작품을 통해 유럽적인 정서를 드러내려는 게 아닙니다. 베르디는 베르디로, 바그너는 바그너로 표현되듯이, 창극을 오롯이 한국적인 것으로 드러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