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재희] 거울에 비춰보기
입력 2011-03-27 19:32
지인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자기성찰 능력’을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자기성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문제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고침을 받거나, 가르침을 받을 능력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과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관계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중요한 자기성찰 능력을 갖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남편 모습을 녹화하고 술이 깬 후 보여주면, 자신의 행동에 놀라며 술버릇을 고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우리에게 이런 녹화장치가 장착되어 있다면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성찰능력이 뛰어날 텐데, 우리에게는 왜 수시로 비춰보고 닦아내야만 하는 희미한 거울만 허락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처음 거울 앞에 선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오래전 못마땅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절대자가 된 듯 그들을 요리조리 판단하면서 걷고 있었는데, 불현듯 그들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내가 오히려 잘못된 장본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 순간 비로소 나는 판단하는 위치에서 내려와 피조물의 낮은 자리에 서게 됐다. 이때부터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조금씩 비춰볼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을 갖게 됐다.
그러나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아는 것도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동안 타인을 그리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덜 보고 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에게 비춰진 내 모습을 잘 알지 못했고, 타인과 훈훈하고 풍요로운 관계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지인을 만나면 그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묻곤 했다. 어떤 친구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확실하게 아는 것 같다고 했고, 어떤 친구는 이기적이고, 차갑다고 이야기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는 포근하고 포용력이 있어 보여도 그 경계가 분명해서 다른 사람이 내 안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내 안에 이런 특성이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감추고 싶었던 특성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때로는 이들의 의견에 반박도, 변명도 하고 싶었지만, 이들의 의견이 온전하지는 않지만, 나를 비춰주는 하나의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고 감사하게 받기로 했다.
자기성찰이 중요한 이유는 행동 변화를 위한 기초가 되기 때문일 텐데, 어떻게 이기심이라는 둑을 허물고 은혜의 강물이 막힘없이 넉넉하게 흐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선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기로 했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하고 배려 있는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수시로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조금씩 변화돼 가는 모습에 감사하며, 여유 있게 이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
김재희(심리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