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유병규] 경제정책 유연성 절실하다
입력 2011-03-27 20:05
계절적으로는 매섭던 추위가 점차 풀리는 봄철로 접어들었으나, 국내 경기의 체감 온도는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지난 주말 퇴근길에 만난 택시 기사의 생활고에 지친 푸념이 좀처럼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요즈음 경기가 더욱 어려워져서 여간 살기가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름대로의 원인도 줄줄이 풀어냈다. “나라 안은 날씨가 너무 춥고 구제역 등으로 뒤숭숭한데, 중동 내전으로 기름값은 올라가지, 일본마저 대지진으로 난리를 겪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국내 경기가 예상치 못했던 대내외 여건의 급속한 악화로 빠르게 활기를 잃어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소연이었다.
지표상으로도 국내 체감 경기가 냉랭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황색등이 곳곳에서 깜빡이고 있다. 우선 한국은행이 수일 전에 발표한 3월 소비자심리지수가 2월보다 크게 하락해 100 이하인 98을 기록했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돌면 소비자들 대다수가 향후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 가파르게 낮아져 소비자들의 기대심리가 세계 금융 위기 수준으로까지 악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기업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의 체감 경기를 판단할 수 있는 기업실사지수(BSI) 역시 100 미만에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올 들어 대외거래 실적을 결산하는 경상수지 흑자도 큰 폭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자칫하면 국내 경제가 물가는 빠르게 상승하면서 성장률은 하락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초래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조성될 수 있다.
국내 경기의 회복세를 이어가기 위해서 경제 전반의 상황을 면밀히 점검해 보고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 정책의 목표를 어느 한쪽에 치중하기보다는 물가 안정과 지속 성장의 조화를 이루는 데 두어야 한다. 물가 상승 원인이 주로 외부 비용 증가 측면에 있는 상황에서 물가 안정 위주의 급속한 긴축 정책은 성장 활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거시 정책 측면에서는 금리와 환율을 물가 상승 기대 심리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조정은 하되, 가계나 기업에 너무 큰 부담을 주지 않도록 안정적이며 신중하게 운영해야 한다. 지금처럼 소비 심리와 업황이 약화되는 상황에서는 금리보다는 환율을 통한 경제 안정에 보다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으로 본다.
더 나아가 물가 안정 대책은 일시적인 임기응변책보다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수립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가 국내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물류 유통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기적인 처방전을 제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차제에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국내 형편상 에너지 사용 비용 등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절한지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경제의 세계화로 자본 유출입이 활발해 금리나 환율 정책 효과가 예전과 같지 않은 처지에서는 개별 업체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미시 정책의 역할을 더욱 제고해야 한다. 특히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부품 소재 공급의 차질로 정보통신이나 전자업종과 같은 중소기업들이 곤란을 당하지 않도록 정확한 실태조사와 지원책이 요구된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해외건설 부문마저 침체되고 있는 건설업 대책도 필요하다. 일본이나 중동 그리고 중국 경기 부진으로 인한 수출 경기 악화를 막기 위한 수출선 다변화 노력도 지속돼야 한다. 이에 더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국내외 정세 불안으로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지 않도록 ‘사업별 맞춤형 투자 여건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국내 경기 흐름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가장 염려되는 것이 경기 상태와 정책 실현 사이에 엇박자가 생기는 점이다. 경기 회복 국면에서는 침체 상태로 오인해 부양책을 지속하고,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진작책을 거두어들이면 경기 상태는 악화일로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경기 흐름에 이상이 생기고 있는 지금은 정책 추진의 유연성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