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만 캔 ‘상하이 스캔들’… “스파이사건 아닌 기강해이 치정사건” 의혹 남긴채 서둘러 결론
입력 2011-03-25 19:50
총리실 조사결과 발표… 10명 중징계 요청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25일 이른바 ‘상하이 스캔들’은 상하이 총영사관 외교관들이 부적절한 관계에 있던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33)씨의 요청에 따라 자료를 유출하거나, 비자발급에 편의를 제공한 공직기강 해이 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 또 덩씨에게 유출된 자료 중 기밀에 해당하는 자료는 없으며, 덩씨의 정체는 스파이가 아니라 비자 브로커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리실은 덩씨를 조사하지 못해 그가 보유한 자료가 뭔지 다 파악하지 못한 채 기밀유출은 없다고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 또 덩씨가 비자 브로커라면 영사들에게 돈을 건넸을 가능성도 있는데 계좌추적 등으로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게다가 김정기 전 총영사의 해명이 대부분 거짓말로 판명됐는데도 추가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부실조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
총리실은 김 전 총영사를 비롯해 상하이 총영사관 전·현직 직원 10명의 비위 사실을 해당 부처에 통보, 징계를 요청했다. 외교부는 책임자였던 김 전 총영사에 대해 ‘중징계’ 의견을 달아서 중앙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는 방침이다.
총리실 조사 결과, 덩씨에게 유출된 자료는 사증발급 현황, 외교관 신상정보, 공관 비상연락망, 협조공문 등 상하이 총영사관 내부 자료와 ‘MB 선대위 비상연락망’ 등을 포함해 총 19건으로 파악됐다. 류충렬 공직복무관리관은 “유출 자료 중 사법처리가 필요한 비밀자료는 없다는 게 총리실 판단”이라며 “이번 사건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하거나 검찰 수사를 의뢰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자료 상당수는 법무부 소속이었던 H 전 영사가 덩씨에게 건네줬으며, 지식경제부 K 전 영사, 외교통상부 P와 J 전 영사도 자료 유출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총영사 소유의 정부·여당 정치인 200여명 전화번호는 덩씨의 카메라에 찍혀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전화번호에 대해 김 전 총영사는 그동안 “관저 2층에 보관하던 것으로, 누군가 몰래 촬영해 유출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총리실은 “사진배경이 된 대리석의 재질과 문양으로 미뤄 촬영이 관저에서 이뤄진 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총리실은 “김 전 총영사가 자료 유출을 계속 부인해 유출자를 특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사건이 터진 후 잠적한 덩씨의 정체는 비자 브로커라는 게 총리실 최종 판단이다. 류 관리관은 “복수의 영사들로부터 덩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덩씨의 부탁으로 여러 명의 영사들이 비자발급에 협조해 준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4월 상하이 총영사관이 중국 중신은행 계열사인 중신국제여행사를 개별관광 비자발급 보증(대리)기관으로 지정하는 과정에 덩씨가 개입한 정황이 발견됐고, 중신은행의 또 다른 계열사를 비자발급 대리기관 총괄기구로 지정하기 위해 덩씨가 최근까지 로비를 시도했던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그런데도 총리실은 영사들의 불륜 문제만 조사했을 뿐, 돈이나 뇌물이 건네졌을 가능성은 조사하지 않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