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의 후손, 그래서 더 기대되는 전시회… 독창적 작품으로 입지 굳혀
입력 2011-03-25 17:37
한국 화단을 빛낸 대가의 후손들이 잇따라 전시를 열어 눈길을 끈다. 대를 이어 작업하는 작가들은 누구의 후손이라는 꼬리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이들은 나름대로 독창적인 작품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굳혀 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다음달 24일까지 ‘Unknown Signal’이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여는 도윤희(50) 작가는 ‘꽃과 항아리의 화가’로 불리는 도상봉(1902∼77) 화백의 손녀다. 고교 1학년 때까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는 그는 “알게 모르게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스위스의 바이엘러 갤러리에서 2007년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 개인전을 열었고, 국내에서는 2008년 이후 2년 만에 여는 전시다. 유화로 바탕을 칠하고 그 위에 연필로 이미지를 그린 뒤 바니쉬(광택제)로 마감하는 방식으로 작업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빛을 받은 먼지가 꿀에 달라붙는 이미지를 그린 ‘꿀과 먼지’, 인간의 내면에 있는 냉기를 표현한 ‘살아있는 얼음’, 강한 빛으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을 나타낸 ‘어떤 시간은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등 서정적인 추상화로 할아버지의 구상적인 작품과 차별화했다(02-2287-3500).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다음달 24일까지 ‘억압된 일탈’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여는 허진(49) 작가는 남도 화단을 대표하는 남농 허건(1907∼87)의 장손이다. 그는 전남 진도 출신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1808∼93)이 조선 후기 개설한 운림산방을 5대째 이어오고 있다.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유독동물+인간+문명’ 등 과학문명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지적 탐구를 그린 그의 작품은 한국화의 전통을 대물림하고 있지만 할아버지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르다. 환경과 생태, 문화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해석이 돋보인다(02-737-7650).
27일까지 인사동 노암갤러리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여는 오병재(37) 작가는 ‘빛과 색채의 화가’ 오지호(1905∼82) 화백의 손자이자 오승윤(1939∼2006) 화백의 아들이다. 벽면 가득한 책들을 빛과 색채의 역원근법으로 그린 ‘문양화된 지적 이미지’가 대를 이으면서도 독창적이다(02-720-2235).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