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맹경환] 마쓰시타와 동반성장
입력 2011-03-25 17:37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존경받는 기업가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초등학교 4학년이 최종 학력이다. 1894년 유복한 농가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부친의 미곡 투기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열 살 때부터 오사카 한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오사카 거리의 전차에서 전기의 시대가 올 것을 예감한 마쓰시타는 전기회사에 입사했고, 스물셋에 독립해 회사를 차렸다.
그의 마쓰시타전기는 파나소닉으로 이름을 바꿔 2010년 기준 전 세계 680개 회사를 거느리는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가난, 약함, 못 배움”이었다. 가난 속에서 태어나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고 결심했고, 몸이 약해 평생 동안 건강관리에 힘썼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하는 바람에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여기고 배움에 힘썼더니 성공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마쓰시타는 늘 공존공영(共存共榮)을 강조했다. “기업가 활동의 목적은 이익 추구가 아니라 사업을 통해 공동생활의 향상을 도모하는 데 있다.” 파나소닉코리아 노운하 대표는 “현재도 기업 이념은 공존공영”이라고 소개했다. 마쓰시타는 위기의 순간에 항상 직원과 협력업체를 생각했다. 1920년대 말 대공황기에 기업들은 인력 감축에 나섰지만 마쓰시타는 주2일 휴무제를 실시하며 직원을 자르지 않았다.
마쓰시타의 일화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아타미 회동’이다. 불황이 닥쳤던 1964년 7월, “회사 방침대로 했는데 적자를 봤으니 책임을 지라”는 전국 대리점 사장 170여명과 이틀간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 마쓰시타는 처음엔 흥분했지만 결국 “원인은 역시 우리에게 있었다”며 머리를 숙였다. 회동 3년 뒤 전 대리점이 흑자로 전환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일본 대지진 와중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공산주의 운운하는 재계의 비판도 나왔다. 그래도 대기업들은 연일 ‘동반성장’이라는 타이틀로 협력업체 지원 발표를 쏟아내고 있다. 정 위원장의 ‘스캔들’로 동반성장위원회의 좌초 얘기까지 들리는 요즘이다. MB정부가 동반성장을 주창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대기업의 협력업체 지원도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를.
맹경환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