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 ‘흑인’이야 말하기전 있는 그대로의 피부색을 보라”… 다와다 요코 ‘영혼없는 작가’
입력 2011-03-25 18:19
다와다 요코(51)는 베를린에 살면서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여성 작가다. 세계적 권위의 괴테문학상(독일)과 아쿠타가와상(일본)을 수상할 만큼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는 그에게 가장 낯선 것은 언어다. 누구보다도 언어에 친숙해야 될 작가가 언어를 낯설어하는 건 자신의 감정에 맞아떨어지는 언어를 찾지 못한 데 기인한다. 그건 모국어와 외국어, 양쪽 모두 해당된다.
그의 대표적 에세이집 ‘영혼 없는 작가’(을유문화사)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익숙한 언어가 사실은 얼마나 낯선 매개체인지를 환기시킨다. 그 낯섦을 언어의 이방성으로 부를 때 그 이방성은 외국어뿐만 아니라 모국어에게조차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내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는 내 감정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모국어에도 역시 내 마음과 딱 맞아 떨어지는 단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유창하게 모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구역질이 났다. 그 사람들은 말이란 그렇게 착착 준비되어 있다가 척척 잽싸게 나오는 것이고 그 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거나 느낄 수 없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14쪽)
이런 맥락에서 에세이집에 등장하는 독일 여성 샤샤는 주목할 만하다. 샤샤는 다와다가 함부르크의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문맹의 여인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샤샤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지각한다. 샤샤는 세상을 ‘읽기’보다는 정확하게 관찰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보이는 세상을 이미 고정된 세계 해석에 연결시키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자 하는 인물이다. 다와다는 샤샤를 통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하나의 결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각하는 수많은 다른 대안적 지각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여자는 나를 볼 때마다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주 집중해서 관심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때 한번도 내 얼굴에서 무엇인가를 읽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12쪽)
또 다른 문맹인 소냐는 포장지에 비누와 상관없는 불사조가 인쇄되어 있는 비누를 선물 받고 포장지를 바로 벗겼다가 다시 싸두었다. 글씨를 못 읽는 소냐의 입장에서 포장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할 길은 그 방법밖에 없었다. 다와다는 이처럼 언어를 매개로 한 기존의 자동화된 세계 인식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감각 기관마저도 의심한다. 예를 들어 그는 “우리에게 눈으로 지각하는 일은 너무나 쉽게 일어나서 모두 지나치게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쓰고 있다. 그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가로막는, 중간에 놓여 있는 방해물에 대해서 글을 쓴다. 이 방해물은 주로 언어라는 매체뿐만 아니라 신체의 감각 기관들에게도 해당한다.
“우리는 게으르기 때문에 새로 빛의 유희를 언어로 옮기기보다는 언어의 이미지를 시각으로 옮긴다. ‘저 사람 흑인이야’라고 뇌가 말하면 눈은 더 이상 그 피부의 색을 진짜로 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80쪽)
다와다에게 언어는 독일어로 남성명사인 연필처럼 여전히 외국어로 머물고 있다. 이렇듯 그의 에세이는 두 언어와 두 문화 사이에서 진동한다. 여기엔 그의 독특한 체험이 작용하고 있다.
그는 1960년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했다. 1979년 그는 19세의 나이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홀로 독일로 건너간다. 이 체험은 평생 동안 그의 문학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집을 떠나기 전, 그의 할머니는 “여행이란 낯선 물을 마시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는데, 다른 나라에는 다른 물이 있듯 그는 다른 언어를 서서히 받아들이며 언어와 언어를 섞어버리거나 언어적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글쓰기에 몰입하게 된다.
번역자인 서울대 독문학과 최윤영 교수는 “다와다는 크고 검은 눈자위 가득 문학이 아니면 존재 이유가 없다는 무언의 신념이 엿보이는 작가”라며 “그의 작품은 이러한 진지함과 새로움과 낯섦에서 카프카를 연상시키고, 첼란을 연상시키고 또 벤야민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동시 통역사의 언어에 대한 강박을 다룬 소설 ‘목욕탕’도 함께 출간되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