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논설위원, 대지진직후 도쿄를 가다(2)
입력 2011-03-25 17:03
후쿠시마현 아픔과 눈물
꽃샘추위가 물러난 지난 토요일(19일) 도쿄는 화창했다. 21일 월요일이 ‘춘분의 날’로 공휴일이라 3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해서 사람들의 표정은 지진의 후폭풍으로 가슴앓이 하던 며칠 전과는 조금 밝아진 듯 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도쿄 요요기(代代木)공원 한쪽은 한숨으로 가득했다. 도쿄 주변에 살고 있는 후쿠시마(福島)현 출신 젊은이들이 도호쿠(東北)지방 지도를 펼쳐놓고 머릴 맞대고 고심하고 있었다.(사진 1)
“정부가 못한다면 시민들이 나서야지요”타악기 연주자 나리타 테츠로(成田哲朗, 사진 왼쪽)씨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주변에 사는 우리 부모 형제들이 현재 피난소로 대피해 있는데 그대로 있다간 방사성 물질 때문에 위험할 것이라서 식구들을 어떻게든 데려오기 위해 방법을 짜고 있다”며 자신들이 모인 이유를 말했다. 일본정부는 이미 그들에게서 신뢰를 잃은 듯 보였다.
방사능이 대량 유출되고 있는 제1원전에서 불과 5㎞ 떨어진 도미오카초(富岡町)에서 산다는 호리모토 마나부(堀本學, 사진 오른쪽)씨는 이번 지진 발생 직전 일이 있어 도쿄에 나왔다가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현재 원전에서 35㎞ 정도 서쪽으로 떨어진 다무라(田村)시 피난소에 있는데 하루 속히 도쿄로 데려와야 한다고 울먹거렸다.
이런 일은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자 호리모토씨는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는 지금 원전 주변 반경 10∼20㎞ 내에 있는 주민들을 피신시키느라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사실 일본정부에 있었다. 대지진으로 원자로의 냉각장치에 전원이 차단된 데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 준비된 예비발전기조차 쓰나미로 작동 불능상태에 빠지면서 원자로 격납용기를 싸고 있는 격납건물 천장이 폭발하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방사능 누출이 벌어지자 정부는 허둥지둥 사태수습에 임했다. 호리모토씨는 “이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처음엔 괜찮다고 했었다. 12일엔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10㎞ 안, 13일엔 20㎞ 안 주민들에 대해 피난할 것을 권고하는 등 말을 계속 바꿨을 뿐 아니라 뒤늦게 서야 대책을 꾸리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제(18일 오후 현재)는 원전에서 30㎞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정부가 주장하고 있으니 그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마찬가지로 도미오카초에서 살고 있던 오누키 히로유키(大貫寬之)씨는 지진 발생 다음날인 12일 가족 11명과 함께 빠져나왔지만 다른 친척들이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그날 오후 원전 1호기에서 폭발음이 들리자마자 탈출을 시도했으나 지진으로 도로가 유실된 곳이 적지 않았고 연료부족 때문에 연고가 있는 요코하마(橫浜)에 15일에야 겨우 도착했다. 평소 때라면 두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사흘이나 걸려서 도착하고 보니 이제는 함께 오지 못한 친척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오누키씨는 친척들이 원전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이와키(いわき)시 피난소에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물도 부족하고 하루 주먹밥 하나로 견디고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데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피난소 뿐만 아니라 이와키시 전체가 물자부족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그의 마음앓이가 충분히 가슴에 닿아온다. 게다가 그 당시 이와키 남쪽 90㎞에 위치한 이바라키(茨城)현 미토(水戶)시 이북부터는 일반시민의 통행을 막고 있었다. 그는 “정부가 못 한다면 개인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개별 접근을 막는다는 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조적인 도쿄 요요기(代代木)공원 풍경분노와 슬픔에 찬 이들의 표정은 오랜만에 따뜻한 날씨의 토요일을 맞아 봄을 만끽하고 있는 요요기공원의 인파들(사진 2, 3)과 너무나 달랐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대학생 A군에게 지진 공포에선 좀 벗어났느냐고 했더니 그냥 웃기만 한다. 원전 폭발 사태가 아직 수습되지 않았는데 불안하지 않느냐고 하자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크게 걱정은 안 한다”고 대꾸한다. 방사성 물질이 수도권에서 검출되기는 했지만 위험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란다.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그래도 방사성 물질을 우려해 빨래를 밖에 널지 않기로 했다”고만 대답한다.
사실 언제까지 지진 직접피해지역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이 침잠해 있을 필요는 없다. 지진 직접 피해지역이 자연과 싸우는 최전선이라고 한다면 후방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일상으로 돌아와 차근차근 모든 것을 차질 없이 대응하는 것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그래야 피해지역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진 피해와 무관하게 나몰라하는 것은 안 되겠지만 지나친 피해의식에 매몰돼 있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50대 후반의 여성 B씨에게 물었다. “(지진 발생 직후인) 지난 주말에는 너무 무서워서 집에만 있었는데 오늘은 날도 풀리고 해서 나왔다”고 대답한다. “모두들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원전 공포는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역시 마음 한 구석에는 지진 피해지역 사람들에 대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겠지만 우선은 담담히 지금에 최선을 다 하겠다는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만인 18일부터 민영 TV방송들은 재해 관련 보도를 줄이면서 방송프로그램을 거의 정상화했고, 국영방송인 NHK도 19일부터 정규 방송체제로 복귀했으니 도쿄의 일반 사람들 태도가 다소 누그러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요요기공원의 대조적인 표정만큼 나리타씨 그룹의 문제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나리타씨는 지금 자신들처럼 후쿠시마에 있을 가족들을 걱정하며 개별적으로 계획을 짜고 있는 사람들이 도쿄 인근에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초동 대응에서 실패하고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정부가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 사이, 피해지역 출신 사람들은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는 한편 대재해의 공포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도쿄 주민들은 따뜻한 봄볕만큼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20일 오후 나리타씨에게 계속 전화를 해봤지만 불통이다. 원하는 대로 가족들을 데려왔으면 좋으련만.
21일 오후 어렵사리 전화가 연결된 오누키씨는, 처음 데리고 함께 온 가족들은 요코하마에 그대로 두고 자신만 이와키시의 피난소로 들어가 친지들과 함께 지내며 현지에서 볼런티어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음식사정도 조금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식수 등이 절대 부족하단다. 원전 사고 공포 때문에 일부러 떠나온 그가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 활동을 한다고 하니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개인 자격으로는 그분들을 데려올 방법이 없으니 차라리 그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일을 떠맡는 게 도쿄에서 마음 졸이는 것보다는 낫겠는 생각이 들었다”고 대답한다.
재난을 이기는 지혜란 바로 그런 것일 터. 할 수만 있다면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어렵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그들의 아픔을 담아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리타씨, 호리모토씨, 오누키씨 등의 아픔과 눈물이 나의 기도제목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국민일보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