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선진화 방안] 구제역 대재앙 부른 밀집사육 언급 없어 ‘반쪽 대책’

입력 2011-03-24 18:54


정부 대책은 방역 매뉴얼 개편, 축산업 허가제 도입을 두 축으로 한다.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질병이 발생하면 곧장 총력전 태세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또 가축을 키우려면 허가를 받도록 해 현재의 밀집사육, 열악한 사육 환경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116일 동안 전국을 뒤흔든 이번 구제역과 같은 ‘판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 재발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방역 강화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별 가축 사육두수 총량제, 지역단위 양분 총량제(가축 분뇨량을 제한하는 제도) 도입이 빠진 채 허가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구체적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당장 축산업 허가제나 매몰 보상비 지급 적정 기준 등을 놓고는 입장 차가 작지 않다.

◇가축 질병 ‘초전박살’=방역체계 개선은 기존 방역 매뉴얼을 원점에서 검토해 완전히 뜯어고쳤다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초동대응 강화를 위해 일시정지(스탠드스틸·Standstill) 제도를 도입했다. 질병이 발생하면 초기에 해당 농가뿐만 아니라 전국 분뇨·사료 차량 등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이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분뇨·사료 차량 이동 통제에 실패하면서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전국으로 빠르게 퍼졌다는 반성에 따른 대응이다.

국경 검역도 까다로워진다. 중국 등 우리 주변 국가에서 상시적으로 구제역·AI가 발생하는데다 해외여행이 잦아지면서 가축 질병 외부 유입이 심각해서다. 정부는 축산업 관계자가 가축 질병 발생 국가를 방문하기만 해도 검사·소독을 의무화했다. 안동처럼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발생 국가를 다녀오고도 신고조차 않는 문제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서울대 수의대 유한상 교수는 “다른 질병도 마찬가지로 의심 증상이 나오면 이동 제한 등으로 강하게 묶어야 한다”며 “방역 체계를 탄탄하게 하고, 초동 대처를 강화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축산농가 책임 커진다=허가제 도입은 방역 ‘1차 방어선’인 축산농가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차단방역시설 등을 갖추도록 강제할 수 있다. 다만 농가 반발 등을 감안해 정부는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허가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대규모 농가부터 시작하고, 소규모 농가는 현재 시행 중인 등록제를 강화한다. 가금류나 우제류 가축을 사육하는 모든 농가는 등록해야 한다. 정부는 구체적인 대상·시기·방법을 다음달 말까지 확정할 방침이다.

또 정부는 현재 시가를 기준으로 지급하는 매몰 보상금 지급 체계에 손을 댄다. 적정 수준만 보상해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는 생각이다. 대규모 축산농가는 백신접종 비용도 일부 부담해야 한다. 축산농가들이 방역에 신경을 쓰도록 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정부 대책이 축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릴 기회를 놓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최윤재 교수는 “친환경, 동물복지를 뼈대로 하는 축산업 선진화로 귀결돼야 하는데 이번에 사육두수 총량제 도입, 양분 총량제가 빠진 것은 문제”라며 “경제성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감내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구제역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찬희 조민영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