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화련] 황금항아리
입력 2011-03-24 17:48
언제부터인가 옷 욕심이 줄었다.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리지 않게 된 때부터였을 것이다. 분명 예쁜 옷인데 입고 보면 예쁘지 않으니 새로 사기보다 있는 옷을 활용하게 되었다. 옷만이 아니다. 찻잔과 찻숟가락을 꽤 오랫동안 모았는데 그만 시들해졌다. 그것들이 장식장을 가득 채울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채워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
나이가 드니 물건 욕심이 저절로 줄어드는구나, 바람직한 현상이다 했다. 무소유의 삶이 그리 어려울 것도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 착각은, 항아리 하나를 보면서 깨졌다. 경주의 한 서원에 들렀을 때였다. 서원 옆 찻집 마당에 장독대가 있었다. 쌀 한 가마니는 거뜬히 들어갈 만한 항아리가 대여섯 개 놓였는데 그중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경상도 옹기답게 생김새가 펑퍼짐했다. 어깨가 넓고 아무 무늬가 없는데 색깔이 좀 달랐다. 흑갈색 몸통의 윗부분, 전 주위로 누런빛이 둥글게 덮여 있었다.
누르스름한 그 빛깔이 이상하게 마음을 사로잡았다. 장독대에 내리는 묽은 봄 햇살이 모두 거기 모인 듯했다. 아직 닦이지 않은 금 빛깔이라 할까, 익을 대로 익은 곡식의 빛깔이라 할까, 눈부시지 않지만 부드럽고 따스해 보였다. 따스함이 더께진 듯 그 부분이 도도록했다. 잘 끓인 좁쌀죽을 엎질러 놓은 것 같았다. 눈을 떼지 못하고 서 있으려니 갖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다.
짐작대로 오래된 항아리였다. 찻집 주인의 고향 마을 할머니가 평생 쓰던 것을 얻어 왔다고 했다. 그 항아리의 장맛이 유난히 달다며, 무척 소중히 여기는 눈치였다.
그것과 닮은 게 있을까 해서 틈틈이 찾아봤다. 골동품 골목을 뒤지고 이름난 옹기마을에 가 봤다. 길을 가다 남의 집 뒤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 한 옹기 수집가가 나왔다. 20년 동안 전국을 돌며 500여 개의 옹기를 모았다는 그의 집에는 호루라기, 분첩, 풍로 등 벼라별 게 다 있었다. 그가 최고의 보물이라며 자랑하는 항아리를 보는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누런빛이 몸통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6대째 옹기를 굽는다는 장인이, 그게 바로 ‘황옹’이며 솔잎 유약과 소나무 장작만을 써야 그런 색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집가는 그것을 황금항아리라 불렀다.
내가 한눈에 반한 것도 어쩌면 황옹의 빛깔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괜찮다. 그것은 이미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항아리를 보러 가끔 찻집에 들른다. 어떨 땐 문이 닫혀 있어 먼발치서 보고 온다. 엊그제 갔더니 아직 쌀쌀해서 그런지 골짜기엔 인적이 뜸하고 항아리들만 묵묵히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길을 내려오며, 그 항아리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빌었다. 내가 미처 모르는 어딘가에 더 많은 황금항아리가 듬직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니, 맛뿐 아니라 세월까지도 그윽하게 품고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새로운 황옹, 우리의 전통기법을 되살리려 애쓰는 장인의 혼으로 빚어질 멋진 황금항아리를 그려 보았다.
이화련(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