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제2의 ‘개구리소년’ 비극 막으려면

입력 2011-03-24 20:23


천진난만한 소년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나갔다. 대구 달서구에 살던 9∼13세 초등학생들이다. 집을 나서서 인근 와룡산으로 향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허사였다. 소년들이 발견된 건 11년 6개월이 지나서였다. 와룡산 중턱에서 나온 유골. 경찰이 저체온증에 의한 자연사로 추정했으나 유골 감정 결과 타살로 판명됐다. 1991년 3월 26일 발생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의 비극적 결말이었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2006년 3월 공소시효(15년)가 끝났다. 같은 해 1월과 4월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과 함께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일반인의 뇌리에서 잊혀갔다. 하지만 소년들은 지난달 개봉한 영화 ‘아이들’로 다시 우리들 곁에 찾아왔다. ‘아이들’은 24일 현재 관객 200만명에 육박하는 흥행돌풍을 일으키면서 아픈 기억을 되살렸다.

반인륜범죄 공소시효 없애야

내일이면 사건 발생 20년이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둔 부모들은 20년간 비탄에 잠겨 고통의 나날을 보냈을 터이다. 지금 아버지들은 범인을 향해 절규한다. “처벌도 원망도 하지 않을 테니 어린애들을 왜 죽여야만 했는지 알려 달라.” ‘아이들’ 상영을 계기로 유족들은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과 함께 반인륜범죄 공소시효 폐지 및 민간조사(탐정)법 제정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회적 관심도 다시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이들이 대국민 서명운동에 나선 건 실종·미제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다. 여론에 호소하려는 것이다. 2007년 12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연장된 것도 이형호군 사건을 영화화한 ‘그놈 목소리’에 따른 여론의 힘에 의해서였다. 당시 국민 10명 중 7명이 반인륜범죄 공소시효 폐지에 찬성했다. 일본은 한 발 더 나갔다. ‘묻지 마 살인’이 늘자 25년으로 돼 있는 살인죄 공소시효를 지난해 4월 아예 폐지했다. 1880년 근대 형사절차법을 도입한 이후 130년 만의 일이었다. 이 또한 피해 유족들의 공소시효 폐지 운동이 밑바탕이 됐다.

선진국도 살인죄는 예외

물론 공소시효가 폐지되면 수사기관으로서는 수사 효율성이 떨어지고 증거 보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법적 안정성이 깨진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공소시효 제도를 둔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학기술 발달로 수사기법이 진화한 데다 유족들이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요구가 달라지고 있다. 국가마다 다르지만 선진국에서 살인죄에 대해서만은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이유다. 미국(연방법)과 영국은 살인죄에 공소시효가 없고, 독일은 계획살인 등에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논란이 벌어진 건 오래됐지만 입법정책에 반영되진 않았다. 이젠 바뀔 때가 됐다. 지난해 실종·가출사건은 6만여건으로 이 중 약 1%가 미제사건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한다. 누적된 미제 실종사건은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전미찾모는 추정한다. 아동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연약한 아동·여성 대상 성범죄야말로 영혼까지 파괴하는 인면수심의 범죄다. 이러한 반인륜범죄는 시효에 관계없이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욱 거세지는 추세다.

공소시효가 배제되는 게 처음도 아니다. 1995년 ‘5·18 특별법’과 ‘헌정질서파괴범죄 특례법’을 제정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이제 한 맺힌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우리도 특별법 제정이나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해 죗값을 치르게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개구리소년’이 발생하지 않는다. 반인륜범죄 공소시효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때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