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떠난 엘리자베스 테일러
입력 2011-03-24 00:50
“나는 평생 화려한 보석에 둘러싸여 살았어요.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고 갈구하고 열망했던 것들은 이런 보석 따위가 아니었어요. 내가 평생동안 원했던 것은, 가지고 싶어했던 것은 누군가의 진실한 사랑과 그것뿐이었어요.”
할리우드 은막의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기의 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숨졌다. 향년 79세.
CNN방송을 비롯한 외신들은 테일러가 23일(현지시간) 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테일러의 대변인인 샐리 모리슨도 성명을 통해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 테일러가 이날 로스앤젤레스(LA)에서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모리슨은 “고인이 LA의 시더-시나이 병원에서 오늘 평화롭게 숨졌다”면서 “그녀의 모든 자녀들이 임종을 지켰다”고 밝혔다. 그는 “고인이 최근 여러 합병증으로 고생해 왔지만 상태가 안정적이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테일러는 2004년부터 앓아온 울혈성 심부전증 증상이 악화돼 지난달 11일 이 병원에 입원, 6주가량 치료를 받아왔다.
테일러는 ‘만인의 연인’ ‘할리우드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20세기 은막을 주름잡은 최고 스타 중 한명이었다.
1932년 영국 런던에서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테일러는 3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비버리 힐즈로 이주했다. 열 살 때인 42년 ‘귀로’로 영화에 데뷔했고 소녀시절 ‘작은 아씨들’(1949), ‘신부의 아버지’(1950) 등에 출연하며 스타로 발돋음했다. 51년작 ‘젊은이의 양지’에서 수려한 외모로 주목받았으며, 이후 ‘클레오파트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자이언트’ 등의 대표작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열었다. 61년 ‘버터필드 8’, 66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차례 수상했다. 93년에는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99년엔 영국 정부로부터 여성에 대한 기사 작위에 해당하는 데임 작위를 받기도 했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에이즈기금을 설립해 에이즈 예방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막 밖에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7세 때 콘드래드 힐튼과 첫 결혼한 후 영국 배우 리처드 버튼과 두 번 결혼하는 등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96년 여덟 번째 남편 래리 포텐스키와 이혼한 그는 슬하에 4명의 아이와 10명의 손주, 4명의 증손주를 두고 있다. 그는 말년에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 61년, 90년 두 차례에 걸쳐 폐렴으로 병원 신세를 졌고, 97년에는 뇌종양 제거 수술, 2009년에는 심장판막 수술을 받는 등 20여차례 수술을 받았다.
고인은 생전인 1989년 한 인터뷰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내 인생에서 벌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병상에서도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온 자서전 원고를 직접 썼으며 자신이 죽은 후 책을 발간하게 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테일러의 자서전에는 8번의 결혼식을 올린 자신의 경험담과 할리우드의 놀라운 비밀들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장례식은 이번 주 후반에 열릴 예정인데 비공개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