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정운찬] 정치력 부재·처신 물의… 與 ‘희망’서 ‘부담’으로
입력 2011-03-24 10:06
“노이즈 마케팅으로 떠보고 싶었는데, 결국 노이즈 마케팅으로 발목이 잡힌 것 아니겠어요. 답답합니다.”
며칠 새 뉴스의 중심이었던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에 대해 여권 핵심관계자가 23일 내린 평가다. 미행설까지 제기하며 사직서를 낸 정 위원장의 처신이나 자서전에 정 위원장을 등장시킨 신정아씨의 행동 모두 몸값을 올리려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신씨의 일방적인 주장 때문에 정 위원장을 비판하고 싶진 않지만 전직 총리로서 초과이익공유제와 관련해 그가 보였던 일련의 행동은 비판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권 내부에선 정 위원장이 비판받고 있는 원인으로 정치력 부재와 이에 따른 처신 문제를 꼽는 목소리가 많다.
사실 정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논란거리를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이제야 정운찬답다”라는 일부의 호평이 있었다. 2009년 9월 총리에 지명되며 ‘친서민 실용’의 기수로 화려하게 조명 받던 정 위원장은 임기 내내 ‘세종시 총리’로 불릴 만큼 세종시 수정 문제에 매달렸고, 결국 세종시 수정안 부결과 함께 10개월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현 정권 정책에 일방적으로 순응하기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많았다.
따라서 정 위원장이 5개월 만에 초과이익공유제를 들고 돌아오고, 대기업은 물론 여권 고위인사들과도 격렬히 다투는 모습은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라는 사회적 의제를 자신의 브랜드로 만들 가능성도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정 위원장은 내부 조율을 통해 첨예한 이슈를 차근히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초과이익공유제와 ‘4·27 분당을 공천론’으로 정치인으로서 가능성을 열어놓은 효과를 극대화시키기에 급급하고, 감정적으로 풀어간다는 인상마저 심어줬다.
수도권 친이계 한 의원은 “하도급법 개정 후속 조치로 납품단가 연동 등 동반성장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정 위원장이 논란거리에 집중한 것은 대기업과 맞서 싸우는 이미지를 굳히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원은 “사퇴라는 카드를 내세워 체면을 세워주기를 바라는 모습과 ‘청와대에서 응답해야 한다’며 대통령에게 공을 넘기는 모습까지 보인 것은 미숙한 처신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판이 쏟아지자 정 위원장을 앞세운 차기 대선 전략까지 구상했던 여권 핵심부도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마땅한 대항마를 찾지 못하고 있는 친이계 주류는 대권주자로서 정 위원장 가능성을 타진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차질이 생기는 모양새다.
한나라당 지도부 역시 당장 4·27 재·보선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 위원장 영입에 열을 올린 데다가, 그에 대한 공천 문제를 놓고 이재오 특임장관과 임태희 대통령실장 간에 파워게임설이 나돈 것 자체가 당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신정아 자서전 논란마저 불거지자 경기도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정 위원장을 ‘전략후보’로 내세운다는 여권 핵심부의 계획도 무산되는 분위기다. 여권 관계자는 “정운찬 전략공천 카드는 이제 추동력을 잃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