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동수] ‘간바레 닛폰!’을 외친 韓·中 젊은이들

입력 2011-03-23 17:48


“일본 대지진은 동아시아 젊은이들이 더 가까워지고 공감대를 넓힐 계기가 됐다”

아직 수습단계에 있지만 이번 일본 대지진은 전후 일본 역사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리란 분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미국이 9·11 테러 이전의 미국과 그 이후의 미국으로 분류됐듯.

그만큼 이번 재앙이 일본에 가한 타격은 컸다. 특히 일본 젊은이들의 상실감은 대단했던 것 같다. 인터넷에 올라온 일본 젊은이들의 글을 보면 ‘나라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총체적 국난이다’ ‘일본은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들이 많다. 무기력하고 패기와 도전의식이 결여돼 있다며 윗세대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아온 일본의 젊은 세대에 일대 각성이 일어나는 듯 하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는 지진 후 일본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며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일어나 사회 전반의 개혁을 주도하리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 대지진이 한국과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번 일본 지진을 통해 일본이란 이웃나라를 새롭고 깊게 들여다보게 됐다. 그리고 일본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는 성숙함을 내보였다. ‘과거는 과거, 지금은 일본을 도울 때’라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본돕기운동은 한류 연예인들의 기부행렬과 맞물려 ‘기부 한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였다.

더 놀라운 것은 중국 대학가의 반응이다. 과거사와 영토 분쟁을 놓고 일본제품 불매운동까지 펼치는 등 반일(反日)의 거점이 돼 온 베이징대 칭화대 푸단대 등 중국의 주요대학에서 “일본인을 애도하며 일본을 도와야 한다”며 가두 모금 행진까지 벌인 것은 일찍이 볼 수 없던 진풍경이다. 푸단대의 한 학생은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모금함에 넣었다. 작은 돈이지만 바다 건너 일본에 반드시 닿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겨 잔잔한 감동을 불러오기도 했다.

서로 경원시하던 동아시아 3국 젊은이들이 일본 대지진을 통해 더욱 가까워지고 공감대를 넓히게 된 것은 분명 역사의 반전이다. 모금운동을 벌인 한·중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인류애’를 얘기했다. 이번 재앙은 일본만의 일이 아닌 ‘인류 전체의 일’이므로 ‘인류의 이름’으로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국적과 민족을 넘어 인류애의 기치 아래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을 외친 한·중 젊은이들에게서 동아시아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다. 이들이 좁은 영토의식과 낡은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에 ‘통 큰’ 공감과 협력의 장을 펼쳐갈 주역이 되길 기대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역설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쟁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감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감하는 인간(호모 엠파티쿠스)이 새로운 인류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예견한다. 전 세계가 이번 일본 지진에 대해 안타까움과 깊은 연민을 느낀 것도 이 공감 본능이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발화했기 때문이리라.

일본 대지진은 인류가 상호의존적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새삼 일깨워 줬다. 앞으로 어떤 나라에 어떤 재난이 또 닥쳐올지 모른다. 그것은 이번 같은 쓰나미일 수도, 환경재앙일 수도, 전쟁일 수도, 악성 전염병일 수도, 경제공황일 수도 있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한 나라가 이런 재앙들을 다 감당해 낼 수는 없다.

세계사를 돌이켜보면 재난이 인류 진보의 기회가 된 경우가 허다했다. 이른바 재난의 역설이다. 이번 지진도 그리되어야 할 터이다. 일본은 더 강하고 새롭게 일어서야 하고, 한·중·일은 갈등과 경쟁 대신 우애와 협력의 정신을 키워 나가며, 지구촌은 더 연결되고 하나 되는 공동운명체로 진화해 가야 한다.

일본 도호쿠 대지진은 단순히 참혹한 재앙으로서만 끝나선 안 된다. 인류역사를 진보시킨 전화위복 사례집에 또 하나의 케이스를 추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박동수 카피리더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