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 투병으로 하나된 김승태 장로 가족 스토리… “가족의 힘으로 희귀병 꼭 이길거예요”
입력 2011-03-23 20:36
예영커뮤니케이션 대표 김승태(53·거룩한빛광성교회) 장로는 지난 3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대학 개강 날 학교를 간다던 장녀 선영(한신대 독어독문 3년·24)씨가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밀검사 결과 백혈병이나 혈액암은 아니지만 항암·방사선 치료,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암과 차이가 없었다. 당시 선영씨의 혈구 수치로는 6개월 이내에 60%가 사망하는 중증 상태였다.
하지만 다음날 김 장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의외였다. “이런, 일이 없어도 바빠 죽을 지경인 아빠를 수발하도록 묶어두니 이런 불효막심한 딸내미가 어디 있습니까? ㅎㅎㅎ” 그 뒤로도 거의 매일 올라오는 그의 글들은 하나같이 농이 섞여 있었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통화를 하면서 물었다. “따님 병 상태가 전혀 위중하지 않아 보이네요?” 그제야 김 장로는 “가장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잖아요”라며 아버지의 ‘본심’을 드러냈다. 가족들은 “며칠 동안 아빠는 계속 울기만 했다”고 귀띔했다.
거기에는 ‘출판 일을 딸에게 너무 과하게 맡겼기 때문’이라는 아버지로서의 자책도 배어 있다. 선영씨는 동생 하영(22)씨와 함께 일찍부터 출판 편집을 배워 아버지 일을 도와왔던 것이다.
아버지의 응원글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답글이 쇄도했다. 그러자 선영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골수이식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빡빡 깎던 지난 17일, ‘인증샷’이라며 자신의 민머리를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선영씨에게 주어진 재생불량성빈혈은 국립암센터에도 1년에 2∼3명밖에 보고되지 않을 정도로 희귀한 병이다. 거기다 골수이식을 한다고 해도 완쾌가 불가능하고, 병원비만도 억 단위다. 감당키 어려운 액수지만 선영씨 가족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혈관병의 경우 선영씨처럼 한 달도 채 안 돼 골수를 이식받고 수술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선영씨는 지난 2년 동안 6∼7차례의 헌혈과 골수 기증 신청을 통해 이미 골수 정보가 국가에 등록돼 있어서 그만큼 복잡한 과정을 줄일 수 있었다.
기증자와 골수가 일치하는 경우도 2만명 중 1명 꼴이다. 자신은 겁이 많아 수술대에 누울 수 없다던 동생 영준(고1)군의 골수가 마침 선영씨와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장로는 “처음부터 모든 일이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어서 마치 하나님께서 차트를 갖고 하나하나 이끌어가고 계시지 않나 착각할 정도”라고 고백했다.
가족들은 요즘 선영씨 때문에 눈물이 많아졌다. 눈물만큼 사랑도 더 돈독해졌다. 하영씨는 “가족 한 명 한 명이 모두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걸 경험했다”고 했고, 영준군은 “아빠가 만날 큰누나를 혼내는 줄만 알았는데 엄청 사랑하신다는 걸 눈물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됐다”고 했다.
김 장로도 “선영이의 아픔은 일밖에 모르던 나에게 가족, 자녀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줬다”고 말했고, 선영씨의 엄마 원성삼(48) 권사는 “온가족이 예수님의 사순절 고난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는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김 장로 가족은 선영이와 이 땅의 또 다른 수많은 ‘선영이들’을 위해 페이스북을 통해 노래를 한 곡 선사했다. 이해인 수녀의 시에다 그룹 부활이 곡을 붙인 ‘친구야 너는 아니’란 곡이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에필로그=22일이 선영씨의 24번째 생일이었다. 하지만 가족 중 아무도 생일 축가를 불러주지 못했다. 선영씨는 29일 골수이식 수술을 위해 21일부터 무균실에서 항암제를 맞으며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가족들은 생일 전날 선영씨에게 성경책 한 권을 선물했다. 가족들이 줄 수 없는 위로와 용기를 하나님께서 대신 해주시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Key Word-재생불량성 빈혈
골수가 적정량의 혈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질환이다. 백혈구 부족으로 인한 면역력 감소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방사선이나 항암제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15∼30세의 젊은층에서 특히 많이 발생한다. 증상으로는 피로감, 호흡 곤란, 두통, 열, 점막 출혈 등이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