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한풍 모진 세파에도 丹心으로 피고 지고… 강진에서 만나는 원색의 꽃 물결

입력 2011-03-23 21:17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중략)/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중에서)

강진군청 뒷산 초입의 영랑생가에서 시작된 원색의 물결은 ‘정약용 남도유배길’을 따라 걸으며 더욱 화려해지고 거세진다. 영랑 김윤식(1903∼50)은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음악성 있는 시어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던 시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생가답게 초가집으로 복원한 영랑생가 너른 앞마당에는 모란이 새싹을 틔웠다.

툇마루와 기둥에 바른 들기름 냄새가 구수한 안채 작은방은 영랑이 결혼 후 거처하던 곳. 마당에는 ‘마당 앞 새암을’의 소재가 되었던 우물과 시비 몇 개가 있다. 은행나무 고목 그늘 아래에 위치한 사랑채는 영랑이 작품 활동을 하던 공간으로 대다수의 시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남도의 원색은 영랑생가에서 한바탕 흐드러진 춤사위를 펼친다. 청잣빛 하늘에서 봄바람이 불자 안채 뒤편의 초록색 대숲이 빗자루로 마당 쓰는 소리를 낸다. 봄바람이 파도처럼 증폭되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의 소재가 되었던 수령 300년의 동백나무 다섯 그루도 어깨를 들썩인다. 초록색 잎과 진홍색 꽃이 물감을 섞어 휘젓듯 아찔한 꽃멀미를 불러일으킨다. 영랑생가의 동백꽃은 오월에 피는 모란꽃과 함께 뚝뚝 떨어져 마당을 구른다.

영랑생가에서 뒷산을 올라 강진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금서당과 충혼탑을 거쳐 사의재에 이르는 골목길은 영랑의 시 ‘내 마음 고요히 봄길 우에’의 이미지가 그대로 묻어난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산새가 지저귀는 허물어진 돌담 안에서는 온갖 꽃나무와 풀들이 하늘을 우러러 나날이 키를 더하고 있다.

사의재(四宜齋)는 1801년에 강진으로 유배를 온 다산 정약용이 4년 동안 기거하며 ‘경세유표’ ‘애절양’ 등 저서를 남긴 실학의 태동지.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를 갔던 다산은 조카사위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강진으로 다시 유배지가 옮겨졌다.

월출산 누릿재를 넘어 강진 땅에 첫발을 디딘 다산에게 호의와 인정을 베푼 사람은 동문 밖의 주막집 주모와 그의 외동딸. 주모로부터 작은 방 한 칸을 얻은 다산은 ‘생각, 용모, 언어, 행동을 마땅히 바르게 해야 할 방’이라는 뜻에서 당호를 사의재(四宜齋)로 명명했다. 사의재와 주막은 근래 복원된 건물인데도 옛 정취가 그윽하게 묻어난다.

사의재에서 다산이 잠시 기거했던 제자 이학래의 집이 있던 목리마을까지는 강진의 소박하고 정겨운 골목길이 이어진다. ‘정약용 남도유배길’은 갈대밭이 멋스런 탐진강 하구의 남포마을과 보리밭이 광활하게 펼쳐진 구강포 들판을 거쳐 다산초당 초입의 귤동마을로 들어선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300m 길이의 산길에는 얼키설키 엮인 소나무 뿌리가 계단 역할을 해 눈길을 끈다. 이를 보고 정호승 시인은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길/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무심코 힘껏 밟고 올라가다가 알았다/지하에 있는 뿌리가/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이라고 노래했다.

다산이 10여년 동안 머문 다산초당은 원래 허름한 초가였다. 그러나 1957년에 복원되면서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74년에는 다산의 처소였던 동암과 제자들이 거처했던 서암도 복원됐다. 동암은 목민심서, 흠흠심서 등 600여권의 책을 저술한 곳. 다산이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동암 옆 바위는 구강포 들녘과 강진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훗날 천일각이 세워졌다.

다산초당과 백련사 사이에는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약 800m 길이의 산길이 있다. 다산과 백련사의 혜장선사가 서로 오가며 학문과 사상을 논하던 오솔길로 주변에 야생 차나무가 많아 만덕산을 ‘다산(茶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정약용의 아호 다산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만덕산 중턱에 위치한 백련사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나무 숲이 바다처럼 펼쳐진다. 5.2㏊에 이르는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나무 숲으로 수령이 500∼800년이나 되는 동백나무 고목 8000여 그루가 밀림처럼 우거져 장관을 이룬다. 다산은 이곳의 동백꽃을 선춘화(先春花)라고 불렀다. 봄에 먼저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동백꽃은 햇살이 반짝이는 초록잎을 캔버스 삼아 청사초롱을 닮은 꽃이 진홍색으로 빛날 때 아름답다. 그러나 동백꽃은 송이째 뚝뚝 떨어져 풀밭을 수놓은 모습이 더 아름답다. 어둑어둑한 숲을 뒹구는 동백꽃이 햇살을 받아 환하게 웃는 모습은 차라리 섬뜩하다고나 할까.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언제 가장 아름다울까?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동백꽃이 반쯤 떨어져 풀밭을 시뻘겋게 물들일 때가 적기라고 설파했다. 이때쯤이면 동백나무 숲에 붉은색 물감을 쏟아 부은 듯해 제 정신인 사람은 차마 환하게 웃는 동백꽃을 즈려밟고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죽어서 더 아름다운 백련사 동백꽃이 어두운 숲 속에서 남도의 원색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 미소를 짓고 있다.

강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