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강렬] 145년만의 귀향

입력 2011-03-22 18:57

리델(Felix Clair Ridel·한국명 이복명), 가톨릭 사제인 그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조선에 잠입해 8도를 돌며 선교를 했다. 1866년 혹독한 박해를 만난 그는 천신만고 끝에 중국 톈진으로 탈출, 프랑스 해군의 로즈 제독에게 조선 상황을 설명했다. 대원군은 1866년 천주교 탄압포고령을 내려 프랑스 선교사 12명 가운데 주교 2명과 신부 7명 등 총 9명의 선교사를 죽이고 조선인 신자 8000여명을 학살했다. 리델은 조선이 프랑스 선교사를 참수한 데 항의하러 떠나는 로즈 제독의 함대에 조선어 통역으로 승선했다. 프랑스 해군은 그해 10월 12일 강화근처 해안에 도착한 후 강화성을 공격했다.

“훌륭한 서고도 있었습니다. 책들은 모두 지질이 좋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한데다 모두 제목을 잘 써 붙였습니다. 진홍색 또는 초록색 비단으로 표지를 만들고 구리판을 대어 제본한 것들이었습니다. 임금의 외출을 그린 행차그림, 왕실 혼례그림, 임금의 장례 행차그림 등이었습니다. (중략) 조선의 옛 역사를 기록한 책 60권도 있었습니다. 이 서고에는 적어도 2000∼3000권의 장서가 있었습니다.”

후에 주교로 승품해 6대 조선교구장을 맡은 리델 주교는 1866년 12월 그의 형 루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발생한 도서 및 은괴 등 탈취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강화도에 외규장각이 설립된 것은 1781년(정조 5년)이다. 강화유수 서호수가 행궁 동쪽에 건물을 짓고 강화부 내책고에 있던 어필(御筆), 어제(御製), 옥인 등 왕실의 책과 물건들을 이곳에 옮겼다. 1782년 건물이 완공된 뒤 서울 창덕궁 봉모당에 있던 왕실 물건들도 옮겼다. 특히 각 사고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모아 외규장각에 보관토록 했다. 따라서 이 외규장각의 어제와 어필들은 창덕궁 규장각과 외규장각에만 있었다. 이 귀중한 보물들을 프랑스군이 병인년에 약탈해 갔던 것이다.

로즈 제독 휘하 프랑스 수병들이 약탈해 갔던 외규장각 조선왕실 의궤 197종 297책이 28일을 시작으로 5월말까지 4차례에 걸쳐 항공편으로 한국에 돌아온다. 이 의궤는 서울대 규장각 등에 있는 의궤와 달리 모두가 임금이 보던 어람용으로 리델이 보고 기록한 것처럼 질이 높다. 이번 반환도 워낙 귀중한 물건이라 한꺼번에 옮기지 않고 나눠서 운반하기로 했다고 한다. 145년 만의 귀향이다. 말 못하는 물건이지만 얼마나 감회가 새로울까? 빨리 보고 싶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