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박병광] 이 땅에 묻힌 중국군들이 돌아갈 날

입력 2011-03-22 18:29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인대의 결정사항을 들여다보면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에서 중국지도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전인대는 약 3000명에 달하는 각 지역과 직능 그리고 민족 대표들이 모여서 다양한 당면 과제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중앙정부에서 보고한 것들을 평가하고 추인하기 위한 요식절차에 불과하다. 그런데 올해 전인대에서는 흥미로운 주장이 관심을 끌었다.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의 대표로 참가한 치우산산(?山山)이라는 남성이 과거 항일전쟁시기 미얀마 전선에 파병되어 그곳에서 희생된 중국 원정군(遠征軍)에 대한 국가의 관심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파주 적성에 100여구 안장

당시 중국은 미국 등 연합군과 협력하여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미얀마 정글로부터 중국 남부에 이르는 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수십만의 중국군이 미얀마 전선에 파병되었으며 이 가운데 2만명에 달하는 전사자 유해는 아직도 본국으로 송환되지 못한 상태이다. 치우 대표는 오늘날 중국의 국력은 크게 신장되었으며 이제는 타향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유해를 발굴해 조국에 안장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국가가 나라를 위해 숨져간 개인에게 존중을 표시하는 것이며 또한 국가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첫째, 이른 시일 내에 유해발굴에 착수하고 둘째, 발굴유해의 본국 송환 후 안장을 추진하며 셋째, 이를 추진하기 위한 전문기구의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

중국은 이제 살아있는 자들의 민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죽은 자들에 대해서도 국가 차원의 책임과 배려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한국전쟁 당시 이 땅에서 숨진 중국군 전사자들의 유해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중국군 병사들 유해는 본국으로 송환되었거나 북한에 안장되어 있다. 그러나 남한 땅에도 당시에 숨진 중국군 병사들의 유해는 적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가운데 일부는 우리 군 당국에 의해 묘지로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호 증진 소재로 만들어야

‘적군묘지’로 불리는 ‘중국군 묘지’는 북한군 전사자 처리 과정에서 함께 조성된 것으로서 1996년 5월 우리 군 당국에 의해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만들어졌다. 중국군 묘지에는 현재 100구 이상의 중국군 시신이 안장되어 있으나 지난 2000년부터 우리 군 당국이 한국전쟁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하면서 발굴되는 숫자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적군으로 참전한 중국군 병사들의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까지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적군의 유해까지도 묘지를 조성해 안장한 것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임에 틀림없다.

인류 역사는 어떤 면에서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이다. 그리고 세계 모든 나라는 자국 전사자들의 유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나라가 부강해질수록 이러한 관심은 더욱 증대되는 추세이다. 이제 중국도 타국에서 숨져간 병사들의 시신 발굴과 명예회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남한에 묻힌 중국군 병사들의 유해 송환문제가 한·중 간의 이슈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군 묘지의 존재가 한·중 간 또 다른 마찰의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호 증진의 새로운 소재가 되도록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적군의 썩어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고 떼마저 입혔으니 죽음은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임을 보여 준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시구가 생각난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硏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