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깡에 유령 캐피털까지… 서민 등골 빼먹는 ‘금융사기의 덫’

입력 2011-03-21 21:20


#1. 저축은행, 대부업체에서까지 대출을 거부당한 A씨는 20% 금리로 대출을 해준다는 문자메시지를 떠올렸다. 메시지를 보낸 곳에서는 A씨·의 신용카드로 대형마트 등에서 전자제품 100만원어치를 사고 수수료를 뗀 뒤 8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른바 ‘현물깡’ 수법이었다. 당장 현금이 필요했던 A씨는 이를 수락했지만 6개월 뒤 연체이자 등으로 불어난 빚에 허덕여야 했다.

#2. 급전이 필요했던 B씨는 최근 ‘××캐피털 연 7∼13% 이자, 신용불량자 가능’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전화 연락을 했다. B씨는 유명 대기업 계열사로 믿고 대출을 받기 위해 신분증과 통장 사본을 팩스로 보냈다. 하지만 이후 대출을 받기는커녕 전화 연결도 되지 않았다. B씨는 “개인정보만 고스란히 유출돼 범죄에 악용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고금리를 틈타 서민을 상대로 한 금융사기가 진화하면서 피해도 늘고 있다. 카드깡이 금융당국 단속으로 인해 불가능해지자 ‘현물깡’ 등의 수법이 확산되면서 개인의 빚 부담이 늘고 카드사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기존 금융회사의 이름까지 도용하는 대출 사기가 판치고 있어 여신금융회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1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카드 불법할인(깡)을 한 카드 회원을 제재한 건수는 5만9530건에 달했다. 2006년 7만건에 달했던 제재 건수가 급속히 줄어 2008년 3만건까지 감소했지만 2009년부터 다시 늘기 시작하는 추세다. 가맹점 제재 건수는 전년보다 3.4% 감소했는데 이는 카드깡업자가 위장 가맹점을 만들고 허위 매출을 일으켜 카드사의 돈을 빼갔던 수법에 대한 감독 및 관리가 강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카드깡 단속을 피하기 위해 발전된 형태가 바로 현물깡이다. 현물깡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자신의 신용카드로 대형마트, 백화점,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고가 물품을 구입하거나 상품권을 구입해 오면 이를 사채업자가 할인 매입하는 방식이다.

대부 중개업 사기도 기승이다. 이들 업체는 제도권 내에 있는 ‘○○금융’이나 과거에 있었던 ‘××캐피털’ 등의 이름을 빌려 서민들의 신뢰를 얻은 뒤 대포통장 등의 개설을 위해 개인정보를 알아내거나 취급수수료와 전산조작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낸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 같은 불법 대출 중개수수료 피해 신고 건수는 지난해 5612건으로 2009년 3332건보다 68%나 늘었다. 피해액은 55억원으로 2009년(27억원)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피해가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현물깡을 하면 당장 목돈이 손에 쥐어지는 대신 업자가 수수료를 많이 떼기 때문에 그 빚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당초 금액의 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저신용자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카드사도 회원의 연체 부담을 져야 하는 고통을 받는다.

금융사기 피해가 늘자 금융당국은 불법 할인을 유도하는 대출 광고를 보더라도 이용 전에 여신금융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대출상담사의 협회 등록 여부를 확인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금융위기로 금융회사의 대출심사가 강화되고 고금리로 인한 부담감이 높아지자 금융사기들이 늘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미소금융, 햇살론, 다이렉트대출 상품 등 자신의 신용도나 담보에 적합한 상품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