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상호] 도로 위의 나비효과

입력 2011-03-21 17:46


우리는 흔히 가슴이 답답할 때 ‘화병에 걸렸다’고 한다. 화병이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화가 나서 생기는 병’인데, 사실 이것은 ‘화를 참아서 생기는 병’이다. 오랫동안 화를 삭인 것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우울감, 불안감, 가슴 두근거림 등의 증상을 보이는 질환이 그것이다. 감정을 절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많이 발생하는 일종의 분노증후군이다.

최근 이 화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 일이 있었는데, 얼마 전 TV 뉴스에 나왔던 아찔한 장면들 때문이었다. 차선 변경으로 실랑이를 하던 중 난폭하게 끼어든 차량이 급정지를 하며 위협하다가 급기야 신호대기 중 차에서 내려 항의하러 다가간 뒤 차량 운전자를 후진으로 치고 달아나버린 사건, 끼어들지 못한 차량이 굉음을 내며 쫓아와 옆 차량을 들이받고 반대 차선으로 밀어붙여 하마터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사건 등이 그것이다.

뉴스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 실제로 우리 도로 위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화풀이성 보복운전으로 한 해 교통사고가 1600건이나 발생했고, 그로 인해 35명의 소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은 그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다.

화를 너무 참고 살아서 화병이란 병까지 걸리는 사람들이 왜 운전대만 잡으면 없던 화까지 내는 것일까.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자기 영역을 침범한 것에 대한 분노’라든가 상황에 비해 지나친 분노를 폭발시키는 ‘간헐성 폭발장애’ 등의 질환이 원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런 것만이 난폭운전, 보복운전을 일으킨 원인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도로 위에서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다. 도로 위에서의 나비효과란 작은 차이가 결국 매우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차선 변경을 하느라 살짝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 쌓이고 쌓여 수㎞ 뒤에서는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되는 것을 말한다.

즉 끼어드는 차량에 대해 먼저 양보를 했다면 끼어든 차량도 다른 차량에 양보할 가능성이 높지만, 고의적으로 끼어들지 못하도록 했다면 상대방은 화가 나서 다시 다른 차량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심할 경우 보복행위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뉴스에서와 같이 심각한 폭력행위까지 저지르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지만 그들을 욕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서로 양보하고, 무리한 끼어들기를 자제하는 운전 예절을 지킨다면 작은 선행이 큰 축복을 가져오는 긍정적인 나비효과로 인해 교통체증은 물론 보복운전과 같은 난폭운전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존중의 예절이 희박해져 가고 있지만 도로 위에서만은 화가 나더라도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정상호 교통안전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