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정운찬 vs 조국

입력 2011-03-21 17:46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많이 닮았다. 둘 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갔다 와 모교 교수가 됐다. 지금은 조 교수가 진보의 아이돌이지만 정 위원장도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영입하려 애썼을 정도로 한때 진보 진영의 기대주였다.

둘 다 진보의 가치를 앞세운 말과 글로 비판적 지식인의 이미지를 쌓았다. 거물 멘토가 그들을 앞에서 끌어주었다. 조순 전 서울시장은 정 위원장의 대선 고민을 비롯해 기회마다 애제자에 대한 신뢰를 표현했다. 조 교수는 2007년 12월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국가인권위원이 된 이래 중요한 인권 쟁점에 개입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같은 태생 다른 선택

두 동심원(同心圓)은 정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의 총리 제의를 수락함으로써 분리되었고 올해 접점을 만들 뻔했다.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를 놓고 민주당은 조 교수에게 출마를 종용했고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정 위원장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조 교수는 자신에게는 ‘정치근육’이 없다며 사절했고, 정 위원장은 초과이익공유제 구상을 비판받고 의기가 저상되어 있다. 남은 기간 어떤 조화가 일어날지 알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조 교수의 불출마는 굳어졌다. 정 위원장도 자발적으로 출마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두 사람의 대결이 이뤄지지 않게 된 데 대한 아쉬움은 크다. 출사(出仕)는 진보 정권과 보수 정권으로 갈렸지만 두 사람 다 진보의 가치를 평가한다. 최근 ‘진보 집권 플랜’이란 책을 펴낸 조 교수의 전투적 진보성은 이를 나위가 없다. 정 위원장은 이념의 색깔로 보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초과이익공유제는 ‘보수의 온정’보다 ‘진보의 계산’을 기반으로 한 구상으로 보인다. 만약 선

거전이 벌어진다면 본래 동심원임을 깨달은 두 사람이 이공동곡(異工同曲)을 피하기 위해 땀을 흘렸을 것이다.

분당은 중산층이 몰려 사는 지역이므로 한나라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은 이번 선거에서 위태한 가설일 수 있다. 일주일 전 본보 여론조사에서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정 위원장과 붙을 경우 오차범위 내 열세,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는 비교적 큰 차이로 우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저쪽 후보를 보고 이쪽 후보를 정하는 눈치 선거보다 이념의 푯대가 교차하는 선거가 정치에 희망을 불어넣는다.

일단 정치적 모험을 피한 두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해보는 것은 흥미로울 법하다.

정 위원장이 총리를 지내긴 했지만 국정의 고문 역할을 할 원로 그룹으로 분류되기에는 아직 젊다.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정·관·재계의 반발은 학자로서 정 위원장의 권위가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냈다. 학계를 나왔을 때 귀로는 없어졌고, 1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그의 장단점은 거의 다 알려졌다. 그의 지향은 여전히 국가의 미래와 방향을 제시하는 고원함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정치와의 불화가 길어지는 건 좋지 않다. 이상이 높을수록 발을 든든히 디뎌야 하는 이치를 알았으면 한다. 잠시 우회하겠지만 결국은 현실정치에 투신하는 선택밖에 없다고 본다.

현실정치 좌표 고민할 때

조 교수는 진보의 집권전략을 제공하는 브레인 역할을 하겠노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자신을 폴리페서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서구 교수사회를 보라며 자신의 정치 참여를 옹호한다. 영국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권에 ‘제3의 길’을 제시한 앤서니 기든스를 염두에 둔 말 같다. 그러나 기든스가 올라서 있는 학문 기초의 규모를 살핀다면 그런 말은 쉽게 하지 못한다. 미국의 놈 촘스키를 연상시킬 만큼 활발한 정치비판은 브레인이 되는 것과 길이 다르다. 조 교수는 국사(國士)가 될 것이냐, 책사가 되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 아닌가 싶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