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문 (2) 마지막 촬영 앞두고 ‘너를 사랑한다’ 음성

입력 2011-03-21 17:4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사 41:10). 손녀인 디앤지스타 김은경 대표는 걸을 때도, 식사할 때도, 잠잘 때도, 이 말씀을 암송하라고 알려줬다. 수십 번 되뇌었다. 그리고 마음에 결단을 내렸다. “일단 영화에 최선을 다하자. 주님께서 받으실 줄 믿고 힘차게 걸어가자.”

영화 ‘독 짓는 늙은이’에 대한 나의 집념은 강했다. 식이요법을 하며 견뎌냈다. 하지만 어느새 몸이 점점 말을 듣지 않고 급기야 또다시 쓰러졌다. 그때가 지난해 5월이었다. 영화를 대본대로 촬영하는 게 불가능했다. 게다가 투자도 막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정적일 때 기적을 보여주는 분이 아니던가.

처음 ‘슛’ 들어갈 때도 그랬다. 눈 내리는 화면을 담아야 하는데, 2월 중순에 눈을 구경한다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촬영 당일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게 아닌가. 스태프들마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했다. 처음에 한국도자기 회장님인 이의숙 권사님이 제작비를 지원하시며 “영화를 통해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한다”고 격려해 줬고, 마무리 작업에선 한 장로님을 통해 후원하게 해주셨다.

나도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소재익 감독은 대본을 수정해 지금의 상황들을 그대로 영화에 담자고 제안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모든 걸 끝내고 싶어 서둘렀다. 그러나 이런 간절함과 달리, 결국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구급차에 실려 가고 말았다.

이젠 말할 기력도 없었다. 그저 눈만 맞출 뿐이다. 차츰 호흡도 가빠졌다. 누님, 목사님, 사랑하는 가족, 장애우와 창신대 제자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이들이 보고 싶었다. 그때 명확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이제야 주님께 쓰임 받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렇게 누워 있는데, 어떻게 주님을 위해 일하지? 조금만 더 빨리 주님을 따르고 순종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안타까워만 할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그 순종의 길을 걸어가자.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시는 이 은혜의 끈을 놓치지 말자.”

2011년 1월 말, 입원한 병원에서 마지막 촬영을 진행했다. 처음 촬영 때처럼 눈이 내렸다. 감독이 외쳤다. “선생님, 슛 들어갑니다.”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탄 채 식사를 위한 콧줄을 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기운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긴장한 탓인지 무릎에 놓인 대본을 만지작거리는 나의 손이 떨렸다. 아내가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당신은 최고의 배우예요”라며 붉어진 눈으로 나를 응원했다. 영화에서 아내 역을 맡았던 서단비도 “선생님 파이팅”을 외쳤다. 내가 많이 힘들어 보였나 보다. 대사도 없는 신인데 말이다.

“주님, 제게 힘을 주세요.” 그리고 잠시 후 “컷!”

이제 모든 게 끝났다. 피곤이 몰려왔지만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끝까지 남아 스태프들과 기념촬영도 했다. 나는 영화가 어떻게 편집되었는지 모른다. 손녀와 감독에게서 다만 영화제들에 출품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영화 ‘독 짓는 늙은이’는 하나님께서 연출하셨고, 나는 순종했다는 거다. 주님의 뜻대로 이 영화가 사용되길 기도한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