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저자 박영돈 교수, “여러 영적 현상 오직 성경으로 분별해야”
입력 2011-03-21 18:12
최근 성령운동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고 성경을 통해 검증될 수 없는 예언과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성령의 역사로 둔갑되고 있다. 국내에도 각종 은사집회가 성행하고 있다. 물론 성령은 지금도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신다. 문제는 분별이다. 성도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성령의 역사이고 어디서부터가 미혹의 영의 장난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한국교회의 왜곡된 성령운동을 분석하고 성경을 통해 참된 성령의 얼굴을 분별하는 척도를 제시한 안내서가 출간됐다. 성령론을 전공한 박영돈(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과 교수·작은목자들교회 목사) 교수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IVP)이 그것이다.
박 교수를 최근 충남 천안의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만나 성령운동의 문제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먼저 최근 2년간 성령사역의 현장을 발로 뛰며 조사한 이유를 물었다.
“성령론을 가르치다보니 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여러 영적인 현상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하며 성경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시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비판하는 일이 즐거운 일이 아니라 계속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가르치고 증거해야 할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나섰습니다.”
그는 책에서 직통계시, 금니 운동, 쓰러지는 현상, 천국 증언, 예언, 방언, 치유, 성령의 불세례 등의 문제들을 분석 진단하고 해법까지 제시했다. 박 교수는 성경적으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박 교수는 성령을 어떻게 정의할까.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보혜사입니다. 성령은 ‘얼굴이 없는 인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의 얼굴을 감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운동이란 말 자체도 부적합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뜻대로 성령을 마음대로 운동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고 순종해야 하는 인격적인 대상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운동이라는 표현을 붙여야 한다면 성령은 ‘예수운동’, 즉 예수님을 알리고 높이는 운동을 하신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또 성령운동보다 성령사역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현재 한국교회에서 성행하고 있는 치유 사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치유집회가 병을 치유하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더 많은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믿음이 있으면 다 고침 받는다’는 식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된 치유신학이 치유집회를 주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육체의 치유를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성경의 기본 원리에 무지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 속했지만 아직도 이 땅에 속한 지체, 즉 죄와 사망의 육체를 입고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이 치유되기도 하지만 육체의 완전한 치유는 이 땅에 속한 지체를 벗어버릴 종말에 가서야 이루어집니다.”
굳게 믿고 고침 받았다고 선포해 봐도 이 엄연한 사실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 ‘아직’ 치유되지 않는 질병과 고통의 신비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때로 하나님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병과 고통이라는 십자가를 통해서 더 많은 영적인 질병, 교만과 방종을 치유하시고 영적 유익을 도모하신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어떤 영적인 현상이 성령의 역사인지 미혹의 영의 장난인지 분별하는 척도는 성경이라고 피력했다.
“진리의 잣대를 가지고 잡다한 영적인 현상을 진단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중대한 사명입니다.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할까 두려워 성경적인 검증을 회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오히려 성령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물론 박 교수가 국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고신교단 소속이기 때문에 그의 견해에 반대하는 소리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무분별한 사이비 성령운동이 넘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 이 시점에 한국교회가 “참된 성령운동을 분별하는 척도는 성경뿐”이라는 박 교수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
천안=글·사진 최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