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12) 배상민 카이스트 교수

입력 2011-03-21 17:25


나눔상품 3종 디자인·제조 15억대 판매… 수익전액 기부

주는 쪽도 받는 쪽도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카이스트(KAIST) 산업디자인과 배상민(39) 교수가 2006년부터 6년째 주도해 오고 있는 ‘나눔 프로젝트’의 모토다. 나눔 프로젝트는 상품의 기획 및 디자인 단계부터 제작, 판매, 수익금 활용까지 모두 자선을 목적으로 하며 학계와 NGO, 기업이 각기 다른 역할을 통해 나눔 활동에 기여하는 점이 특징이다. 판매 수익금은 전액 저소득층 학생들의 꿈 실현을 위해 지원된다. 배 교수는 나눔 상품의 디자인 및 제조 과정을총괄한다. 2007년 ‘접이식 MP3 플레이어’, 2008년 친환경 가습기 ‘러브 팟(Love Pot)’, 2009년 텀블러(보온통) ‘하티(Heartea)’가 그의 작품이다. 지금까지 세 상품의 누적 판매액은 총 15억원에 이르며 수익금은 전부 월드비전에 기부돼 불우 청소년 147명에게 연 2000만원씩 지원되고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새로운 나눔 상품이 공식 선을 보인다.

지난 18일 대전 카이스트 연구실을 찾았을 때도 배 교수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디자인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올해 내놓을 4호 나눔 상품을 시뮬레이션하는 중이었다.

기자의 요청에 “아직 공개하면 안 되는데…”하면서도 슬쩍 보여줬다. 공식 이름은 ‘캔버스 조명등(Canvas Light)’.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인터액티브(Interactive) 조명등’이라고 했다. LED 전극이 깔린 기판 표면에 ‘터치 센서’가 깔려 있어 사과 같은 물건을 대거나 하트를 그리면 그 모양대로 등이 켜지는 원리다. 가족 간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대화 도구나 아이들의 놀이 기구로 활용될 수 있단다. 올해는 예정일 보다 앞서 10월 쯤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나눔 상품 하나를 만드는 데 꼬박 8개월 정도를 매달립니다. 카이스트는 교수 평가에서 연구 논문 실적이나 연구비 수주를 중요시 하는데…. 이것 때문에 논문 쓸 시간이 없고, 더군다나 수익금은 모두 기부되니까 돈도 못 벌죠. 때문에 처음에 주변에서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총장님을 비롯해 여러 분들이 칭찬하고 지원해 주십니다(웃음).”

배 교수는 이른바 ‘사회 기부 디자인(Philanthropy Design)’이란 개념을 처음 만들어 실천하고 있다. 디자인을 통해 윤리적 생산과 소비를 증진시키고 도적적 가치가 이윤으로 창출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Philanthropy는 고대 그리스어로 ‘사랑을 위해(to love)’란 의미의 ‘Philo-’와 ‘인간(mankind)’이란 뜻을 갖는 ‘-anthropy’를 합친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서양의 기독교 사상이지만 한국의 홍익인간이나 중국의 인(仁)사상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기존의 기부나 사회공헌 보다는 좀 더 자발적이며 크고 넓은 의미의 ‘박애’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 교수는 미국 뉴욕 파슨즈 미대 디자인스쿨에서 8년간 교수로 있다가 2005년 9월 카이스트 교수로 옮기면서 이 같은 사회 기부 디자인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뉴욕서 오랫동안 상업 디자인을 하면서 마치 정크 푸드를 찍어내듯 의미 없고 가치 없는 디자인을 해야 하는 자본주의 안에서의 디자이너 역할에 회의를 많이 느꼈다”고 했다.

배 교수는 세계 최고 명성의 파슨즈 디자인스쿨에서 코카콜라와 P&G, 3M, 월트디즈니 등 유수 기업들의 상품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소비 도시인 뉴욕에서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디자인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 없었고, 사회적 가치를 담은 디자인에 대한 평소 자신의 생각을 실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눔 프로젝트 1호 상품인 ‘접이식 MP3 플레이어’는 2007년 탄생했다. GS칼텍스와 월드비전이 배 교수와 뜻을 함께 해 상품 제작 후원과 자선 대상자 선정을 각각 맡았다. ‘나눔’ 이라는 상징성과 실용성, 예술성을 함께 갖춘 상품들은 큰 주목을 받았고 MP3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1만2000개, 2호 나눔 상품인 ‘러브 팟’은 1만개, 3호 상품인 ‘하티’는 1만5000개 이상 팔렸다. 또 세계 4대 디자인상(독일 iF, 일본 굿디자인, 독일 RedDOT, 미국 IDEA)을 21번이나 수상하는 영광도 누렸다.

나눔 상품 값은 2만5000원∼4만원대로 일반 제품보다 훨씬 저렴하다. 상품을 구입한 사람은 구매자인 동시에 기부자가 된다. 판매 수익금은 결손 가정 중·고교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액 지급된다. 단순한 경제적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수혜자들과 사회 지도자들을 연결해 주는 ‘나눔 멘토링 캠프’를 열어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배 교수도 예술 분야 재능을 가진 학생 40여명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멘토가 돼 주고 있다.

배 교수는 또 기아에 허덕이는 제3세계에서 ‘적정 기술’을 적용한 ‘적정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일명 ‘시드(Seed·씨앗) 프로젝트’를 올해 여름 시작할 계획이다. 적정 기술은 제3세계인들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제품을 현지의 재료와 기술을 이용해 만드는 것을 말한다.

“우선 에티오피아와 네팔을 생각하고 있는데, 방학 때 학생들과 함께 그곳에 머물면서 주민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 예를 들면 물펌프나 농기구 등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 솔루션을 찾을 생각입니다. 현지인 교육도 병행해 나중엔 우리 도움 없이도 스스로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하나의 씨앗’을 심는 거죠.”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가게’와 함께 ‘사회 기부 재활용(Philanthropy Recycling)’도 계획하고 있다. 전국의 아름다운가게로 기부되는 폐품 가운데 쓸 만한 것들을 골라 하이테크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제품으로 디자인하는 것이다. 물론 수익금은 모두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돼 제3세계인들을 위해 쓰인다. 배 교수는 “지구를 생각하는 그린 디자인인 동시에,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기부 디자인을 합친 새로운 개념의 나눔 프로젝트”라고 했다.

“앞으로도 사회 기부 디자인 활동을 통해 진정한 나눔의 가치를 세상에 확대시켜 나가겠다”고 말하는 배 교수는 차별화된 기부 문화를 개척하는 행복한 디자이너다.

대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