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방사능 두려움에 도움손길 뚝… 후쿠시마는 죽음의 땅”

입력 2011-03-20 21:50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과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인한 방사능 유출의 이중고(二重苦)를 겪은 후쿠시마(福島) 지역 교민과 유학생 등 60여명이 20일 오전 2시30분쯤 아시아나 특별기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후쿠시마 지역이 죽음의 도시처럼 변했다”며 “교민들이 서둘러 탈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교민과 유학생 등은 후쿠시마에서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가 모두 취소돼 항공사 측이 준비한 버스를 타고 도쿄 하네다 공항으로 이동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방사능 감염에 대한 걱정 속에 오랜 여행을 한 탓인지 입국장에 들어선 사람들의 표정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서둘러 빠져나온 것처럼 간단한 짐 가방만 들고 나온 사람도 많았다. 공항에 마중 나온 가족을 만나자 긴장이 풀린 듯 부둥켜안고 흐느껴 울기도 했다.

교민들이 전한 후쿠시마의 모습은 참혹했다. 원전에서 불과 30㎞ 떨어진 이와키(磐木)시에서 온 주부 인정임(55)씨는 친동생을 만나자 일본에서의 고통이 생각나는 듯 1분가량 말없이 흐느꼈다. 인씨는 “원전과 가까워 도움을 주러 오는 사람도 없었고, 구호물자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며 “후쿠시마 인근 지역에는 지나는 사람조차 없어 완전히 죽음의 도시 같다”고 전했다. 인씨는 이어 “도망가고 싶어도 기름이 없었고, 먹을 것도 떨어져 눈물만 나는 상황을 버텨야 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이정숙(63)씨는 “원전에서 50㎞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지냈다”며 “지진 때문에 머리가 계속 아프고 방사능 유출도 걱정돼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원전 폭발을 처음 경험한 노인들이 방사능 유출을 크게 걱정하며 불안해한다”며 “후쿠시마 지역에서는 원전 반대 시위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씨는 또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어도 기름과 돈이 없어 못 가는 사람 많다”며 “친한 일본인 친구가 ‘혼자 살려고 도망가느냐’고 말해 정말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와키시에서 온 주부 채기순(58)씨는 “일본 사람보다 한국인 등 외국인이 겪는 불안함이 더 크다”며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를 탈출할 차편도 보내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다른 교민은 “기본적인 생활물자조차 지급이 안 돼 일본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한국이나 다른 나라 보도를 보면 방사능 유출 위험이 큰 것 같은데 일본 정부는 자꾸 괜찮다고만 한다”고 비판했다.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높은 후쿠시마 지역 교민들이 입국했지만 인천공항에서의 방사능 검사는 소홀했다. 한국으로 시집 온 엔도 노리코(43)씨는 “다섯 살 난 딸과 들어와 방사능 검사를 받고 싶었는데 검사하는지도 몰랐다”며 “지금이라도 다시 들어가면 검사를 받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인천공항에 방사능 검사대 2기를 설치했고 한국원자력안전공사 직원들이 검사를 하고 있다”며 “그러나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 안내방송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웅빈 진삼열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