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석유·LNG·곡물값 다시 강세… 지구촌 ‘물가 쓰나미’
입력 2011-03-20 18:41
동일본 대지진의 ‘경제 충격’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폭발, 일본 기업 생산라인 마비 등 2차 피해가 예상외로 커지면서 세계경제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충격은 ‘물가 쓰나미’로 가시화됐다. 원전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석유 등 에너지 수요가 상승세를 탔다. 중동지역 정정불안으로 폭발력이 높아진 국제 에너지 가격에 불을 붙인 셈이다. 산업생산 차질도 ‘발등의 불’이 됐다. 세계 철강·자동차·반도체·기계 생산업체들이 중간재나 부품 부족으로 가동을 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요동 치는 국제 원자재가격=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 직후 하락하던 국제 원자재 가격이 다시 오름세를 탔다. 대표적인 국제 상품(원자재) 가격지수인 CRB지수는 지난 16일 338.17로 상승 반전한 뒤 18일 351.15까지 뛰었다.
CRB지수는 국제 상품가격 조사기관인 CRB(Commodity Research Bureau)가 곡물·원유·산업용원자재 등 21개 상품선물 가격을 바탕으로 산출한 것으로 ‘인플레 지수’라고도 부른다. 지난해 6월 4일 294.08로 바닥을 친 CRB지수는 올 들어 증가세로 돌아서 지난 7일에는 362.89까지 치솟았다. 이후 지진이 일어난 11일에 351.88, 주말을 지난 14일에는 350.61, 15일에는 338.14까지 내렸었다.
개별 원자재 가격도 심상찮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옥수수 선물은 18일 부셀당 685센트에 거래됐다. 지진 발생 직전인 10일(683센트)보다 높은 가격이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된 구리 선물은 t당 9510달러로 10일(9191달러)보다 3.5% 올랐다. 그간 원자재 가격은 지진으로 세계경제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내림세였다. 하지만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지진이라는 단기충격을 흡수하고, 세계 경기 회복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라는 큰 흐름에 따라 장기적인 상승으로 돌아선 것이다.
또 원전 불안감 증폭으로 석유, LNG, 석탄 등 에너지 가격이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바레인, 예멘 등 중동지역 정정불안은 ‘에너지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이 피해 복구에 들어가면서 곡물, 비철금속, 에너지 등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세했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지진으로 원자재 가격이 크게 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높은 유가 수준이 시차를 두고 물가압력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산업계 속속 생산 중단=글로벌 제조업체들은 직접적 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21일부터 1주일 동안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픽업트럭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 지진으로 일본산 부품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GM이 최근 본격 시판에 들어간 차세대 전기차 쉐보레 볼트도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 GM은 스페인과 독일에서는 오펠 브랜드로 만드는 자동차의 생산을 멈추기로 했다. 한국GM은 부평·군산공장에서 이번 주부터 1주일 동안 주야간 각 2시간씩 잔업 및 주말특근을 중단했다. 르노그룹은 한국에서 생산을 줄이기로 했다. 일본산 부품 비율이 15%에 이르는 르노삼성자동차는 이달 말까지 주말 특근은 물론 평일 주야 2교대 잔업을 중단한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소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액정화면 제조용 필름(ACF) 세계시장의 90%를 차지하는 히타치가 공장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용 액정화면 제조설비인 노광(露光)장치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니콘도 미야기현 공장 가동을 멈췄다. 이 때문에 각국 스마트폰 제조회사들은 생산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각 기업이 부품·소재 재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되면 세계 산업계의 마비증세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찬희 최정욱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