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와 실제 경계 허무는 연극 ‘디 오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배우와 관객, 이야기를 나눈다

입력 2011-03-20 17:21


흔히들 연극 무대를 생각하면, 객석 앞에 놓여있고 조명을 받는 배우들의 공간을 떠올린다. 하지만 오는 4월 26일부터 5월 28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디 오서(The auther)’에는 우리가 생각해온 무대가 없다. 조명이 비추는 공간은 관객들로 가득 찬 객석뿐이다. 배우들은 객석에서 관객과 함께 섞여 연기한다. ‘디 오서’는 관객과 배우,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허문다.

2009년 영국 배우이자 연출가인 팀 크라우치의 창작물이지만 ‘하얀앵두’로 2009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을 수상한 김동현 연출의 손에 의해 국내에서 재탄생됐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과 가해자에 대한 연극을 연출했던 작가와 배우, 그 작품을 관람한 관객이 다시 모여서 그때의 연극을 회상하는 게 줄거리다. 연극 속에 연극이 있는 셈. 주요 등장인물은 작가(서상원), 배우 영필(김영필)과 미도(전미도), 관객 주완(김주완 분) 등 4명이다. 하지만 이들이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 때문에, 관객들도 연극에 참여하게 된다.

관객은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해서 고개를 숙일 수도 있고, 재치있게 되받아칠 수도 있다.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김동현 연출은 “영국 초연 당시 어떤 관객은 나가기도 하고, 대답을 계속하는 등 객석 분위기에 따라 상황이 다르게 연출됐다. 연극은 배우들과 관객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체험을 통해서 완성된다”고 말했다.

연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은 자신이 배우인지 옆에 앉은 배우가 관객인지 헷갈리게 된다. 배우들의 대사가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자신의 이야기인지 허구인지도 모호하게 느껴진다. 배역의 이름을 배우의 이름과 같게 한데다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사실적으로 연기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객석에 앉아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행위에 한정되지만, 다양한 표정과 의도된 말투 등 세밀한 연출력에 의해 캐릭터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김주완은 자신이 맡은 관객 역이 연극을 사랑하는 순진하고 귀여운 청년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가볍고 쉬운 말투를 사용한다.

‘디 오서’는 4월 본 공연에 앞서 관객들과 함께 하는 리허설을 3번 정도 갖는다. 이달 초에 두산아트센터 회원 40여명을 초청해 리허설을 했고, 이달 말에는 홍익대 영문과 학생들이 객석에 앉는다. 실제 연극 전에 배우들도 관객들 속에서 연극을 만드는 체험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