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식·라섹 수술전 꼭 유전자 검사를”… 한국인 870명당 1명 꼴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입력 2011-03-20 17:17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있는 줄도 모르고 라식수술을 해서 한쪽 눈이 뿌옇게 변해 버렸습니다. 다른 눈도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태고요….”
어려서부터 시력이 나빴던 탓에 안경과 렌즈를 착용해 오던 대학생 김정은(26·여)씨는 6년 전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으로 안과에서 라식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뒤 햇빛을 쬐면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 같고, 맑은 날도 한쪽 눈이 안개 낀 것처럼 시야가 희미해졌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 라식이나 라섹 등 시력 교정술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편하고 안전하다고 알려진 시력 교정술도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ACD)’이라는 복병을 주의해야 한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은 각막 중심부(검은 눈동자)에 흰 반점이 생겨, 나이가 들면서 점차 주변으로 퍼져 시력 저하와 함께 결국 실명에 이르는 유전성 질환이다. 특히 라식, 라섹 등 레이저를 이용한 시력 교정술을 받으면 각막 혼탁이 급격히 진행돼 보다 빨리 시력을 잃을 수 있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은 5번 염색체의 ‘TGFBI’라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1988년 이탈리아 아벨리노 지방에서 이주해 온 가족에서 처음 발견돼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한 쌍의 유전자 중 하나만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유전자를 갖는 ‘이형 접합자’는 12세쯤부터 각막에 흰 반점이 생기기 시작해 나이가 들수록 흰 점의 숫자와 크기가 커지고 60∼70세 쯤 시력이 떨어지게 된다. 한 쌍의 유전자 모두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유전자로 이루어진 ‘동형 접합자’는 약 3세부터 증상이 나타나 6세쯤 실명한다. 유전 질환이긴 하지만 햇빛(자외선) 노출이 잦은 실외 근무자나 각막에 상처가 많은 이들에게 더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안과 김응권 교수는 “비교적 진행이 느린 이형 접합자인 경우에도 시력 교정을 위해 라식, 라섹, 엑시머 레이저 시술 등을 받은 후 2년이 지나면 각막 혼탁 증상이 악화돼 실명 위험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시력 교정술을 할 때 각막 사이를 깎게 되는데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을 일으킨 특정 유전자가 자극을 받아 옆으로 분화하거나 더 부풀어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내장 수술처럼 각막 외부를 건드리는 수술에서는 아벨리노 유전자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김응권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에 아벨리노 환자들이 특히 많으며 한국인은 870명당 한 명 꼴로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5000명이 넘는 이형 접합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콘택트렌즈 사용이 많은 20∼30대의 경우 안과 의사가 세극등(미세) 현미경으로 환자의 눈을 들여다봐도 흰 반점이 보이지 않아 놓치기 쉽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으로 인한 각막 혼탁은 완치가 어렵다. 레이저로 혼탁해진 부분을 깎아 내거나 각막을 이식하는 게 최선의 치료다. 하지만 레이저 치료는 각막이 어느 정도 두꺼워야 가능하고 세월이 한참 지나면 다시 각막이 혼탁해지는 한계가 있다. 최근 김응권 교수가 멜라토닌과 리튬이 이 병을 일으키는 TGFBI 유전자와 산화 스트레스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내 새로운 치료법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상용화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라식, 라섹 수술을 받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병 유전자 보유 여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국내 바이오기업 ㈜아벨리노(대표 이진)는 2008년 김응권 교수와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교수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정확도 100%의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유전자 돌연변이 진단법을 특허기술로 개발, 현재 국내 146개 안과로부터 검사를 의뢰받고 있다. 최근엔 일본 라식, 라섹 수술의 80%를 차지하는 최대 안과병원인 시나가와 라식센터와 독점 계약을 맺고 유전자 검사를 추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