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재희] 사쿠라코, 많이 힘들지?

입력 2011-03-20 17:51


네가 사는 곳에 대지진과 쓰나미, 게다가 방사능의 공포까지 밀어닥쳤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몹시 아팠어. 너와 가족들 모두 무사한 거지? 이번 일들을 겪으며 드라마 ‘순정’ 속에서 만난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단다. 계속되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으로 한동안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어.

사쿠라코, 많이 힘들지. 정든 집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 계속되는 긴장과 불안 속에서 답답함과 좌절이 얼마나 크겠니. 계속되는 여진과 방사능의 공포, 또 불편한 하루하루의 생활을 버텨야 하는 고통도 얼마나 힘겨울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질서를 지키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 존경과 감탄을 보냈단다. 식수를 얻기 위해, 자동차에 넣을 기름을 사기 위해, 먹을 음식이나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도저히 위기 상황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질서의식을 보여줬지. 감정이 절제된 그 침착한 모습은 매우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 낯설기도 했단다.

사실 이런 위기에서 감정에 휩싸이면 모두가 더 힘들지도 몰라. 지금은 조용히 이 상황을 넘길 수 있도록 몸을 굽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런지 일본인들은 가족을 잃고도 조용히 울고, 살아있는 가족을 만나도 조용히 기뻐하고, 배가 고파도, 화가 나도 조용히 참고 또 참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네. 이것이 전쟁과 자연재해를 많이 겪었던 일본인들의 생존을 위한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사쿠라코, 그렇지만 나는 그런 네 모습이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리도록 안쓰러워. 참고 참다가 마음과 몸이 많이 상하면 어쩌나 염려가 되어서 그런가봐. 사쿠라코, 언젠가, 너무 늦지 않은 때에, 마음의 빗장을 열고 너를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래. 네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마나 힘겹고 두려웠는지, 얼마나 불안했고 절망했는지, 또 얼마나 울고 싶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어.

전쟁에 나가면서 네 약혼자가 “음악을 잊지 말라”고 소리쳤었지. 그때는 그 말이 너무 생뚱맞게 느껴졌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너에게 나도 그 말을 해주고 싶네. 음악은 너에게 삶의 희망이고, 사랑하는 약혼자와 연결된 끈이며, 또 미래를 향한 희망이었듯이 이번에도 삶의 음악을 잊지 말고 미래의 끈을 꼭 잡으렴. 사쿠라코, 마음이 힘들 때는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피아노를 치며 다시 올 새날을 붙들렴.

언젠가는 이 어려움이 끝나고 또 다른 새날을 맞이하게 되겠지.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 우리의 무력함을 처절하게 깨닫는 이때에 크신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을 너에게 소개하고 싶어. 그분은 너의 아픔을 속속들이 아시고, 너를 진정으로 쓰다듬고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사쿠라코, 너를 사랑해. 그리고 너를 위해 기도할게. 사쿠라코, 힘내!

김재희 심리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