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차정섭] 일본 동포와 한국의 벗들에게
입력 2011-03-20 17:57
“비에도 굴하지 말고, 바람에도 눈에도 한여름의 더위에도 굴하지 말고, 단단한 몸을 가지며, 욕심이 없고, 결코 노하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다.”
도호쿠 지방 이와테현에서 태어난 농민시인 미야자와 겐지(1896∼1933)의 시 ‘비에도 굴하지 말고’의 한 구절이다. 잇단 시련에도 질서를 지키며 양보하고 때로는 웃음까지 보이는 이재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시를 기억했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나라
일본만큼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는 없다. ‘지진, 벼락, 불, 아버지’는 옛날부터 일본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랭킹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실추된 지 오래지만 지진에 대한 공포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혹한 자연재해가 덮쳐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도망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섬나라에서 조상들은 먼 옛날부터 자연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혜택에 감사하면서 살아왔다. 거기서 일본사람은 인내심을 배웠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배웠다.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또한 일본인 고유의 국민성을 키워 왔다. 그중의 하나가 ‘화(和)’다. 공동체를 화목하고 조화롭게 꾸리려면 질서를 잘 지켜야 하고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삼가며 늘 주위를 살펴야 한다. 시민의식이 높다고 칭찬받은 이재민들의 모습은 짧은 기간에 교육받은 것이 아니라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자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동쪽에 아픈 아이가 있으면 가서 돌봐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계시면 그 볏단을 들어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고….” 미야자와 겐지는 이런 인간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일본 사람이 지금 실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정신이다.
며칠 전에 창경궁 앞을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탔는데 여고생이 “일본이 망한대!”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일본은 망하지 않는다.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은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원폭투하라는 비극을 맛봐야 했다. 원폭이 투하된 곳에는 100년 동안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금 히로시마에도, 나가사키에도 수목이 우거져 있다.
내가 한국 교단에 선 지 1년 반이 된다. 그동안 많은 학생을 가르쳤고, 친한 친구도 많이 생겼다. 나의 조국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한 뒤 실로 많은 분으로부터 위로와 격려의 전화와 메일을 받았다. 그중에는 미국 휴스턴에 유학 중인 학생이 보내준 메일도 있었다. 이것은 나 개인이 받은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일본사람 모두가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인 도움에 가슴 뜨거워져
한국인에게서 받는 격려만큼 고마운 것이 없다. 과거 일본인들이 한국인에게 준 고통 때문이다. 3·1절 때 TV를 보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한국인들의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처를 알게 됐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들, 독립을 꿈꾸면서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한국인 첫 비행사 안창남 선생.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격려해 주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목청껏 모금을 호소하고 있다. 대학 밖에서도 여기저기서 모금활동이 시작됐고 많은 시민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잊어서는 안 된다.
“자작나무, 푸른 하늘,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 언덕 위에는 하얀 목련꽃이 피는 아! 북국의 봄.”
이는 일본인이라면 다 아는 노래 ‘북국의 봄’의 한 구절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센 마사오의 고향은 이번 쓰나미로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이와테현 리쿠젠타카다시다.
지금은 차가운 눈이 내리고 있지만 얼마 있으면 올해도 어김없이 늦은 봄이 찾아올 것이다. 여기저기서 목련꽃이 피고 그 뒤를 따라 벚꽃도 만발할 것이다. 그렇게도 가혹한 시련을 가져다준 자연은 이번에도 일본 열도에서 슬픔을 삼키고 있는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줄 것으로 믿는다.
후지모토 도시카즈 (경희대 초빙교수·전 NHK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