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남중] 임기응변 사회
입력 2011-03-20 17:56
김황식 국무총리는 최근 한 강연에서 “구제역 얘기만 나오면 속상하다”면서 구제역 초기 진압 실패에 깊은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면서 “우리가 이런 문제 하나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구나 생각했다”고 한탄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실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도 남한에서 가장 전쟁 위험이 높다는 연평도에 대피소 하나 제대로 준비해두지 않았던 안보 무방비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일본 대지진은 ‘만약 우리나라에도 대지진이 온다면?’이라는 가정과 함께 다시 한번 시스템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시스템 사회’라고 할 정도로 일본이 시스템과 매뉴얼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시스템이라는 말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속도와 융통성을 중시하다 보니 시스템을 답답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임기응변 사회’에 가깝다.
시스템 경시 풍조는 정치에도 책임이 있다. 정치가 시스템의 권위를 수시로 조롱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공직 인사다. 공직은 국가 시스템의 골간을 이룬다. 이런 자리에 정권의 공신들이 낙하산을 타고 수시로 내려앉는다. 대통령과 통한다는 것 외엔 별다른 실력도 자격도 없는 이들이 시스템을 장악하고 앉아 청와대에 주파수를 맞춘 채 멋대로 시스템을 농락한다.
외교 시스템의 고장 신호로 볼 수 있는 ‘상하이 스캔들’은 대통령의 ‘보은인사’가 자초한 사건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선 공신으로 상하이 총영사에 부임한 김정기씨는 외교 문외한이다. 그런 사람에게 총영사관을 맡기는 것은 외교 시스템을 존중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근래 국가정보원에서도 정보가 새는 등 이상 신호가 감지되는데, 역시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원장·기조실장 등 요직을 차지하고 앉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곳곳에 자리 잡은 낙하산 인사들은 우리 사회의 주요 시스템을 파괴하는 바이러스가 되고 있다. 누구의 말, 누구의 의지를 앞세워 매뉴얼도 무시하고 시스템도 초월한다. 한 정권이 물러가고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시스템은 또 비틀어진다. 정치적 변동성이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권력은 바뀌더라도 시스템은 단단하게 남아서 공익의 보루가 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은 시스템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절제돼야 한다.
김남중 차장 njkim@kmib.co.kr